[회원 저서 소개] : 은둔의 나라 러시아 역사 속 민중(상): 깊은 심연을 건너며
저자: 이정희
출판사: 영남대학교 출판부
출판연월일: 201 8년 11월 20일
<머리말>
우리에게 ‘러시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은둔’ ‘묵상과 정교 기독교’ ‘설원의 시베리나’ ‘중앙아시아의 모래사막’ 등이다. 여기에는 온통 신비한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미지 세계의 신비로운 이미지는 본래 모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 뒤이어 다시 떠오르는 단상은 ‘억압’ ‘전제정’ ‘농노제’ 혹은 ‘공산주의 혁명’ ‘무시무시한 대숙청’ ‘전체주의적 독재’ 등의 단어들이다. 이것은 대부분 음울하거나 우수에 가득찬 느낌으로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불멸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인류애가 넘치는 심오한 철학적 사색, 자유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깊이가 넘치는 푸쉬킨의 시와 체흡의 언어들,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프기도 한 차이콥스키의 음악 등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 세계에는 영원히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862년 키예프 공국이 건설된 이래로 러시아는 천 이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기나긴 역사의 수레바퀴를 표현하는 말이 있다. “러시아 민중은 굴복하지 않는다. 오직 인내할 따름이다.” 라는 유명한 경구가 그것이다. 여기서 민중이란 항상 자유와 자치 그리고 토지의 소유를 열망해 온 평민을 뜻한다. 이것은 민족이나 계급의 개념보다 훨씬 넓고 모든 시대를 꿰뚫는 보편적 의미를 띈다. 또한 이 말은 러시아 민중이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해왔는가를 뜻하는 자부심 넘치는 세계관을 말해 준다. 중앙아시아 사막을 넘어서 동방의 유목민은 초원을 타고 끊임없이 러시아를 공격해 왔다. 러시아는 유럽을 보호하는 이를 바 최전방 방패막이로서 맨 먼저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서방 세계조차 더 앞선 물질문명과 전쟁의 기술을 갖고 러시아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이 양방향으로 쏟아져 오는 끝없는 공격과 두려운 도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기독교 문명과 슬라브 문명을 혼합하여 독특한 제3의 문명을 고안하면서 살아 남았다.
저자는 30여 년 동안 대학에서 러시아 역사를 강의하고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일반인이나 젊은이들에게 러시아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존재하는데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제 우리는 한 단계 더 깊이 내려가서 러시아 역사를 꿰뚫는 좀 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인물이나 사건 그리고 감추어진 진실한 스토리에 대해 땀 흘리며 공부할 때가 왔다. 또 지금껏 일반적으로 알려진 짜르, 특권적 계급이나 지식인, 정치가 혹은 사상가 등 지배층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역사 무대 이면에 감추어진 민중과 그들을 대변하던 이름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과 욕구, 이들이 겪었던 좌절이나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쩌면 이것이 러시아와 러시아 인을 리얼하게 이해하는 데 더욱 좋은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6자 회담의 한 국가이며 우리의 민족 통일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대상이다. 상대방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상대방을 친구로 만들거나 극복하게 하는 길일 것이다. 이 책이 이런 염원에 일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이 책은 러시아 역사를 크게 1917년 10월 혁명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기로 둘로 나누고 각 시대의 특성을 말해 주는 사건들을 추려보았다. 혁명 이전 시대의 러시아 민중이 겪은 민족적 고난의 역사를 ‘깊은 심연의 세계’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74년간의 사회주의 실험 끝에 1991년에 종지부를 찍었다. 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첫 실험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과 이에 따르는 민중의 고난에 찬 삶은 ‘높은 장벽의 세계’로 오르는 시련이었을 것이다. 역사는 지나고 나면 과거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눈을 갖는다. 우리는 그토록 기나긴 시간 동안 러시아 민중이 남겨준 경험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미래의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해 혜안을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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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 ‘거룩한 러시아’란 무엇인가: 구교도의 영적 세계
2장 – 17세기 스텐카 라진과 농민반란
3장 – 러시아 청년・대학생의 정치적 행동주의의 시작 1 855-1 863
4장 - ‘인민주의 운동’(v narod)이란 무엇인가?
5장 –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 급진주의(radicalism) 전통의 뿌리, 1 870-1914
6장 – 러시아 최초 사적 상인・기업가의 등장
7장 – 모로조프가 직물기업의 성공 신화, 1 873-1905
8장 – 1905년 혁명 이후 최초 자유주의 의회제는 왜 실패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