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와 디스토피아」
이정희 외
*이글은 이정희 교수(영남대 사학과)가 기획한 「기업가와 디스토피아」(2017년 12월, 영남대 출판부)의 [프롤로그]를 옮긴 것이다.
본서는 기업사 시리즈의 제 1부 <기업가와 유토피아: 기업가는 무엇을 꿈꾸는가>2016에 이어 기업이 초기 팽창과 성공 이후 부딪힌 비극적 좌절과 갈등의 세계, 즉 새로운 디스토피아로 빠져드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서양 각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들entrepreneurs 등장 초기에 유토피아 꿈에 기초한 풍요와 거대한 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으로 발돋움해 가면서 기업가들의 거대한 자본의 세계와 팽창은 겉으로 보이는 번쩍이는 아름다움과 우아한 건축물 뒤에는 서서히 파괴적이며 열악한 환경의 어둡고 음울한 세계, 즉 디스토피아가 번져가고 있었다. 경제적 유토피아를 내세우면서 공룡처럼 팽창했던 각국의 사적 기업들의 영향력과 세력의 한계는 기업 내 노동 분규와 수탈 그리고 정치의 개입 등에서 새로운 국면에 마주치게 되었다.
1910년대 아메리칸 드림과 ‘꿈’을 안고서 각국의 빈곤한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의 방법으로 몰려들었고 또한 남부에서 노예 신분에서 벗어 난 흑인들이 북부 콜로라도의 리들러 광산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이 광산은 미국의 최대의 기업가였던 죤 록펠러가 20여 년 1984년 벤자민 메릿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탈피하다시피 한 자산이었다. 오직 ‘이윤’만을 목표한 기업가들의 운영은 점점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수탈하거나 노도력을 압박해 갔다. 급기야 노동자들은 저항을 시작했고 이것은 다시 유혈적인 학살과 탄압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사상 최악의 폭력이 발생하였다.
독일 나치스 정권은 국민들에게 자동차를 쉽게 가질 수 있다는 꿈을 선전했다. 히틀러는 자동차 대중화를 위해 저가 모델을 개발과 함께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에 직접 개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결국 공장 건설의 재정을 담당한 기업가들의 ‘제국자동차협회’가 물러나게 되었다. 히틀러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게 된 나치스당의 하부 조직이었던 어용적 ‘독일노동전선’은 폭스바겐의 모델 개발과 함께 생산과정을 장악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국민차’ 폭스바겐의 개발을 단순히 경제 성장이나 기술개발이나 일자리 창출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공동체’ 조직을 위한 정치적 목적과 대중 선동에 이용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기쁨을 통한 힘’ 조직은 국민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모금하여 전쟁 준비자금으로 활용하였다. 국민은 결코 국민의 차를 보급받지 못하였다. 결국은 이것은 기업이 철저히 전체주의 국가 권력에 활용된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던 1880년 이후 점점 격렬해져 간 폭력적 노동 분규는 마침내 1905년 수백 명이 학살되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 유혈적 비극은 곧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으로 파급되었다. 급기야 전제 정부와 지배계층은 새로운 위기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1905년 혁명으로 연결되었다. 러시아에서 친슬라브주의적 애국주의에 의거한 기업가들의 순진한 경제적 유토피아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국면이었다.
이처럼 기업이 전체주의 국가 권력에 시녀 역할을 하거나 수탈과 새로운 억압의 선두 주자가 됨으로서 인류를 밝고 풍요에 넘치는 유토피아로 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의 실업과 빈곤, 소외, 억압 또는 전쟁의 도가니로 끌어가거나 폭력과 학살로 얼룩진 어두운 디스토피아 세계를 낳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에서 어떤 원인에서 기업이 그와 같은 한계와 취약성을 갖게 된 것인지, 또 동시에 기업이 어떤 배경 하에서 좌절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또 이 역사적 탐구를 위해서 우리는 유토피아 이상을 위하여 기업이 행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하여 진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들은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러시아 등의 각국의 전문가들로서 각국의 기업가와 기업사를 연구하면서 각국의 기업가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경제 사회적 배경을 갖고 발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모두 다 공통의 현상들, 즉 산업 노동자들의 소외와 저항, 사회적 대립과 갈등 그리고 국가 권력의 불공정한 개입 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업의 성장은 국가의 정치와 사회구조를 떠나서 도저히 가능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 또한 정치의 공정성이나 사회적 평등, 문화 가치의 공유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들의 유토피아의 이상이 단지 꿈으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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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경산 압량벌 영남대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