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712] 우리 사회, 이것만은 바꾸자(3)
겉치레 국정감사 폐지하자!
2017년도 국정감사도 국민의 기대에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을 맺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경우, 36개 기관을 단 하루 만에 감사하고 12시간동안 지속된 감사에서 단 한 차례의 질문도 받지 못한 기관이 11곳에 달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부실 감사’, ‘맹탕 감사’, ‘겉치레 감사’라는 비판이 무색할 지경이다. 실효성도 없이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국정감사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국정감사 무용론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국정감사 제도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 등 국가 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헌 헌법부터 제3공화국 헌법까지는 헌법에서 의회의 국정감사권을 명문화하여 국회에 강력한 감사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국정감사 제도가 폐지되거나 일부 특정 사안으로 제한되는 등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현재 의회청문회를 통해 ‘국정조사’를 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 체제에서 ‘국정감사’ 제도는 없다. 한국과 같이 수박겉핥기식으로 하는 국정감사 제도는 세계에서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시행하는 제도다.
국정감사 제도를 없애는 대신 미국과 같이 청문회를 통해 상시적으로 ‘국정조사’를 철저히 하거나, 아니면 그 대안으로 미국의 정부책임확보원(政府責任確保院,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U.S. GAO)과 같이 우리나라의 감사원을 입법부 소속으로 옮겨 독립성이 강한 전문적인 통제 기관으로 육성, 행정부 정책 등을 상시적으로 철저하게 감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문재인 행정부는 2018 년 6월 13일의 지방자치 선거를 계기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차제에 ‘정치에 의한 행정부 통제’의 원칙에 의해 제도화된 의회의 ‘인사동의권’과 ‘예산통제권’도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미국과 같이 연간 지속되는 의회청문회를 통해 국가의 주요 정책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철저히 하고, 예산통제권과 국무총리, 대법관 등 행정부와 사법부의 주요 인사에 대한 임명동의권을 통해 다른 정부기관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은 그대로 유지시키되,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과도한 관여(excessive attention) 장치는 제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헌법(제86조 등)에 규정된 국무총리 등의 임명에 앞서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규정은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한 망신주기’ 수단으로 전락한 인사청문회 관련 규정(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 제46조의 3 및 제65조의 2 등에 규정)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2017년 11월 22일 ‘고위공직자 임용배제 7대 기준’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천명해 온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인사 원칙에 ‘음주운전’과 ‘성 관련 범죄’를 추가해 7대 비리로 그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청와대가 발표한 ‘고위공직자 임용배제 7대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행정부 ‘고위공직자 임명’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그리고 입법부가 왈가왈부해서는 아니 될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 행사라는 점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3권 분립의 기본 취지다.
그리고 여야당 간의 ‘정쟁(政爭)거리’로 활용되거나, 여야당 일부 간부들의 ‘사적 이익 추구 즉 지역구 예산 챙기기 수단’으로 전락한 의회의 예산통제권 관련 조항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 헌법 제57조의 규정에서, 예산 삭감을 통해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을 설치한 본 뜻에 맞게, ‘정부의 동의 없이’라는 문구를 삭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예산 메커니즘을 잘 아는 국회의원은 정부의 예산안 작성 단계부터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나, 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등 다른 법을 적용해 부당한 청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의회의 행정부 통제권’을 약화시켜 관료제의 자율성을 높이려는 제도 개혁은 다른 한편, 관료들의 ‘제국 형성(empire building)’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언론 등에 의한 비공식적 행정 통제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되고 행정부 내부의 통제 또한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서양 학자들이 몇 백 년 전에 정립한 “행정의 정치에의 예속” 원칙은, 직접민주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21세기의 변화된 정치 환경 속에서 이론적 지지를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적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즉 압제와 가렴주구의 상징인 국왕의 마름 노릇을 충실히 해온 관료 집단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의 통제를 받도록 한 규범은 결코 변경할 수 없는 ‘돌에 새겨진(written in stone)’ 규칙이 아니다. 국가사회의 백년대계를, ‘지속성 있는 공적 책임감이 결여된 여의도의 4년짜리 비정규직’ 손에 언제까지 맡겨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