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세월호 갈등 이젠 벗어나자
괴담·음모론 소모전에 깊은 내상 / 적폐 청산·안전의식 정착 계기돼야
세계일보 : 2017-03-29
이종수 한성대 명예교수·행정학
304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침몰 1073일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녹슨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녹슬어간 3년간은 우리 사회도 함께 녹슨 시기다.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사회 발전이 정체된 시기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괴담과 음모론이 양산되고 사회가 갈가리 찢어졌는가. “미군 잠수함이 들이받아 침몰했다”든가, 심지어 “박근혜정부가 일부러 침몰시켰다”는 등의 수많은 루머가 양산되고, 이들이 각종 미디어 수단을 통해 유포됐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루머가 양산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벌써 “정부가 ‘대통령의 7시간’을 감추기 위해 그동안 세월호 인양을 늦춰 왔다”든가, “왜 하필이면 중국 회사에 인양을 맡겼나”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음모론이 제기되고 유포될 것인가.
‘촛불집회’로까지 이어진 세월호 사건은 급기야 헌법재판소의 ‘피대박파’(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판결을 이끌어내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보다는 대통령 탄핵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게 됐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어떻든 세월호 사건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온 적폐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청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의 기본적 책무가 무엇이 돼야 하는지, 그리고 공직자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였다.
국민이 공직자들에게 위탁한 공적 권한은 공직자들이 그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한 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은 확인해 주었다. 이른바 ‘해피아’들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다중 교통수단에 대한 안전점검을 얼마나 소홀하게 다루고, 안전 수칙을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지를 절절하게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이 세금으로 먹여 살린 공직자들이 그들에게 위탁된 공적 권한을 얼마나 싼값에 팔아넘기는지도 보았다.
세월호가 인양된 이 시점에서 이제 세월호 사건은 다중의 안전과 관련된 유사한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유족들의 애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언제까지 온 사회가 이 일에 매달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소홀히 해야 하는가.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뜻을 올바로 받드는 일일 것이다.
지난 3월 초 국회는 세월호 선체조사 관련 특별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추천 5명, 유가족 3명으로 구성된 선체조사위원회가 꾸려질 것으로 여겨진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 이러한 기구가 정쟁의 장소가 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조사위원회를 통해 세월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면 진혼제 지내듯이 사건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매뉴얼을 작동해 왔다. 대형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정부 당국은 적절한 희생양을 찾아 사법처리함으로써 유족들을 무마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했다. 대부분의 희생양은 자신들이 재수가 없어 희생양으로 선정됐다고 생각할 뿐, 유사한 사고는 계속 재발했다. 때로는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찾아낸 법조항이 구차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회가 발전하자면 대형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적 매뉴얼을 만드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선체조사위원회를 통해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대형사고 발생 시 관련 개선책을 제안하기 위한 별도의 위원회가 ‘자동적으로’ 구성되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종수 한성대 명예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