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술, 담배 없이 남겨진 시간
많은 사람들은 술주(酒) 字의 부수가 물수(水)라고 생각할 것이다. 술은 물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술주자의 부수는 닭유字(酉)이다. 닭고기나 닭의 피로 술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내 궁금증을 해소해야만 했다.
유(酉)자를 부수로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술병을 닮아서다. 술은 종류를 불문하고 술병에 담아 마셔야 하는 것인가 보다. 술은 술 자체보다 풍취나 분위기가 중요함을 옛 선인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술은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연인과 지인과의 풍취를 즐기게 만들어 주어야 진짜 술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술 때문에 전쟁도 나고, 술 때문에 세계의 역사가 바뀐 일들이 허다했다. 트로이가 섣부른 축배의 술을 경계했더라면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의 승패는 바뀌었을 것이고,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또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례는 셀 수조차 없을 터. 술은 전라도 사투리로 ‘징하게’ 오랫동안 인간과 동고동락해왔던 셈이다.
내가 언제부터 술을 즐기게 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요즘은 흑백사진에서나 나오는 교련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로 친구들과 놀러갈 때면 으레 뒷주머니에는 소주 한 병씩 차고 다녔던 기억이 아련하다. 깡소주에 간단한 안주 몇 점으로 시작했던 내 애주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에 비하면 1970년대 대학생들은 아주 순수했다. 대학시절 자주 친구들과 나라를 걱정하며 밤새 토론하곤 했다. 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라 걱정 때문에 친구들과 밤새 토론을 했다고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점 거짓말을 담지 않았다.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주고 받았지만 술과 함께했던 대화의 대부분은 분명 나라 걱정이었다.
내 인생에서 술은 귀중한 도구였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가 생긴다. 술은 처음만난 사람들의 몸을 느슨하게 하고 마음을 풀어놓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주점 한구석에 빈 병들이 쌓이면 서로 허물을 벗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사람이 담배 피우세요? 하고 넌지시 물어보고 다른한 사람이 이에 동의하면 문득, 서로의 불까지 붙여주는 친밀한 사이가 되고 만다. 홀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아무도 모르게 슬쩍 먼저 나간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생긴다. 미처 술자리에서 하지 못한 얘기들이 모락모락 흘러나온다.
어릴 적 국제시장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고철 수집 리어카를 겨우 벗어나, 국제시장 한 귀퉁이에 작은 철물을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 몰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 중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모범생이여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담배피우는 시간은 밤 12시가 지나야 찾아온다. 공부를 하다가 잠이 올 때 담배를 한 대 피우면 잠이 달아나기도 했고, 홀로 달을 보고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른이 된 듯 착각의 시간을 즐기고 싶기도 했다.
결혼 후 아내는 담배만큼은 끊으라고 수없이 조언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흡연은 목숨을 건 도박이라는 말이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공무원 생활에서 술과 담배가 도와준 일들을 열거해 본다면 책 한질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단합을 위해, 마음을 열기 위한 도구는 언제나 술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배우고 익힌 술 마시는 방법으로 그런 시간들이 채워졌다.
‘자기배려’라는 말이 사전에 나오는 바른 단어인지는 모르겠다. 살면서 특별히 내 몸에 배려를 해본 적이 없다. 아침마다 목욕탕에 가는 것과 지인들과 가는 등산 빼고는 특별히 운동이라는 것도 하지 않았다. 키가 작다는 것 빼고는 몸 하나만큼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내 몸에 어떤 것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다. 언제나 건강했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내 몸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새해면 몇 번쯤 해본다는 금연, 금주 선언을 해본 기억도 없다.
그랬던 내게 술과 담배가 없는 시간이 남겨질 줄 몰랐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술과 담배를 끊어가고 있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내게 ‘술과 담배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떤 조짐도 없이 말이다.
2014년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건강검진을 받고 미국에서 아내와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의사선생님께서 귀국 즉시 병원에 들러 달라는 전화가 왔다. 솔직히 좀 걱정이 되어 귀국하자마자 의사선생님을 찾아 갔다. 의사선생님께서 ‘축하한다’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위에 문제가 있는데 정말 초기에 발견되었습니다. 간단한 위 절제수술을 받으시면 백수(白壽)하시겠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신께서 내게 ‘당신은 더 오래 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위암은 초기였고, 수술도 잘 이겨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은 몸은 완쾌되었지만, 나이가 있으니 술과 담배 없는 삶을 조언하셨다.
처음에는 50여년간 소중한 동반자 역할을 했던 술과 담배가 없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막막했다. 담배를 끊었을 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설 때가 제일 두려웠다. 앞서 길을 걷는 행인이 피우는 담배냄새 만큼 지독한 고문이 없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에서 피우는 담배도 이제는 추억이다.
이제 나는 ‘술과 담배 없는 시간’을 ‘정중히’ 받아드리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내 인생은 술과 담배가 없는 시간만으로 채워 질 것이다. 50여년간 소중한 친구였던 술과 담배에 대한 내 절연을 그들도 이해하리라 생각히지만 인사는 해야겠다.
“술과 담배야 고마웠다. 좋은 친구였다.”
술과 담배가 없는 시간은 나 스스로 오롯이 내 삶의 주인이 됨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난 시간은 술과 담배가 내 삶을 중심이었다. 그것들이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 더 귀중한 것들로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을 술과 담배로 채워왔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몇 번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마음 속 다짐은 ‘다시 뒤돌아 가지 않는다’였다. 뒤돌아갈 퇴로를 마련하고 결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술과 담배를 멀리해서인지 어렵지 않게 다른 것들이 내 시간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으니 체중이 줄기 시작했고, 그동안 먹는 혈압약도 필요 없어졌다. 또 술과 담배가 없는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술과 담배를 대신해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을 녹음하기’, ‘영화를 선택해서 보기’, ‘느리게 산책하는 즐거움’, ‘더 맛있어진 음식들’, ‘커피 외에 더 많은 차 맛보기’, ‘책에 할애 하는 더 많은 시간’ 등등.
남는 담배값과 술값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은 더 쏠쏠하다. 욕망을 줄여 얻는 귀중한 소득이니 만큼 귀중한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술자리에 나가 ‘아직도 술먹고, 담배피는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농담도 내 고정 멘트가 되었다.
나는 아직은 젊은가보다. 여전히 하지 말아야 할 것 보다 ‘하고 싶은’ 욕망의 리스트가 더 많다. 요즘 시니어들은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못해봤던 것들을 죽기 전에 꼭 해보고자 하는 ‘버킷리스트’가 유행이라고 한다. 나는 ‘버킷리스트’ 보다는 ‘언버킷리스트’에 더 흥미가 생긴다. 넘치고 남는 욕망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보다 몇 배 더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라는 평생 친구는 나를 떠나면서 더 귀중한 깨달음의 선물을 남겨주고 떠나간 것이다.
오 거 돈 | 부산 동명대 총장· 전 해양수산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