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년, 대한한국의 새 길을 묻다
세계를 돌아보면 한국만치 역동적 나라도 드물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활기에 넘쳐있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사람들은 뛰다 못해 넘어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 마치 ‘러닝 머신’에 서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은지 10년이 됐다.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로 일인당소득 3만불에 달하는 30-50클럽에 가입을 눈앞에 두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해방 직후 한국은 선진국들이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을 만들었을 때 자전거조차 만들지 못했다. 오늘의 한국은 선박,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석유화학 등 생산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경제 규모 2위 중국과 3위 일본 사이에 끼어있다. 중진국 함정은 벗어났지만 겉모양은 선진국인데 행동은 후진국이라 할 일종의 ‘피터 팬’ 증후도 보인다. 흥미롭게도 대학진학률은 세계 1위인데 성형수술율도 세계 1위다. 자살율도 세계 1위이고 산재율도 세계 1위다.
작금 한국은 난리다. 내치는 어지럽고, 외교는 꼬여간다. 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쟁투와 미국과 일본의 밀월 사이에서 외교는 명분도 없고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능력도 없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그간 한국은 후발(後發) 발전국으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왔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압축발전의 과정에서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과정보다 결과, 내실보다 외형, 안전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적당주의, 형식주의, 편법주의가 나타났다.
‘80대 20 사회’ 해결해야 새로운 미래
이미 한국은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바뀌었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다 보니 협동과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도처에 불통, 불신, 불만, 불안이 보인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하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을 키울 필요가 있다.
OECD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사회갈등의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 박람회에 온 것 같다. 온갖 사회갈등—계층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세대갈등, 성갈등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회가 살아 움직인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갈등을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것에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바꿔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통해 사회갈등을 극복하여 사회통합으로 가는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화라는 기회와 위협에 마주하고 있다.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문제는 성장과 배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극적 발전(antagonistic development)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단순히 빈부격차의 차원을 넘어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취업자와 실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구조화되고 있다. 세계화가 명암이 교차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이른바 ‘80대 20’의 사회가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래시계형 사회가 가져올 위험은 ‘두개의 국민’으로의 분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 70년의 압축발전의 빛과 그림자를 미분하고 적분하여 미래 한 세기를 준비해야 한다. 전(前)근대, 근대, 탈(脫)근대의 시간적 중첩아래 이루어진 과(過)발전, 저(低)발전, 미(未)발전의 공간적 병존이라는 복합이행사회로서 한국을 보자. 이 와중에서 경제성장에 비한 사회복지의 지체, 도시화에 따른 농촌 공동체의 파괴, 난(難)개발에 따른 환경오염과 생태위기,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에 따른 디지털 과잉 등이 나타나고 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권위주의와 평등주의, 명분주의와 실용주의, 귀속주의와 업적주의, 정의(情誼)주의와 합리주의 등 사회관계에서 서로 다른 조직원리가 충돌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집단 이기주의, 물질 만능주의, 반인륜적 행위, 생명 경시풍조 등이 그 표출이다.
시민참여에 기반한 발전능력 키워야
세계화 와중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교역을 통해 우리가 먹고살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은 매우 어렵다 못해 참담하다. 식량의 자립도 26퍼센트, 에너지 자립도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시장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위기가 오면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세계경제는 ‘장기적 침체국면’(secular stagnation)에 접어들어 있다. 지구 도처에서 나타나는 경제, 자원, 환경 등 복합위기가 그것이다. 우리의 경우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국의 인구는 2030년 5,216만명으로 정점에 오르고 2100년에는 3,7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2040년이 되면 한국 인구의 중위연령이 52세로 올라가고 25% 정도의 일하는 사람들이 65세 이상 노령자와 14세 이하 유년층을 먹여 살려야 한다. 결국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해 생산과 소비가 멈추는 인구절벽-->재정절벽-->국가절벽 시나리오를 가상할 수 있다.
노동인구의 감소와 부양인구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세수보다 세출의 증가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 있다. 복지, 교육, 국방, 산업 등 세출수요는 늘어나게 되어 있지만 지금의 조세체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2015년 현재 국가, 기업, 가계 빚이 각기 대략 1,000조원을 넘고 있다. 국가부채의 경우 GDP 대비 50%를 넘어 있다.
미래 한 세기를 내다보면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사이의 조화와 균형에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삶의 양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라는 삶의 질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민주주의라는 협치(協治)의 방식으로 담아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새로운 발전전략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생태적 공존을 중시해야 한다. 서양이 발전을 ‘개발과 활용’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하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극이라는 생태위기를 낳아 왔다면, 우리는 그것이 ‘개발과 황폐’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상생의 원리에 의해 조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향해 시민참여에 기반한 자기중심적 발전능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
동북아는 여전히 지나온 역사의 하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과 일본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덫에 갇혀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분단이 불행의 씨앗이라면 통일 한국을 위해 중국과 일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분단의 극복을 위해 보통 두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볼 때, 남북한은 통일도 쉽지 않지만 통합은 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통한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박은 몰라도 쪽박은 피해야 한다. 남북 사이의 이질화는 심각하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은 이념과 체제의 극한대치를 넘어서야 한다.
비전은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다. 미래는 찾아갈 수 없지만 만들 수 있다. 한 세기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비전을 갖고 미래창발(創發)을 위한 예지와 방략을 세워야 한다. 미래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는 자포적 비관론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안이한 낙관론에 머물러 미래를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임현진(서울대 명예교수) - 이 컬럼은 2015년 ‘선데이 중앙’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