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에 몇년 살면서 미국적인 것 중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몇 개 꼽아본 적이 있습니다. 탭 댄스(Tap Dance), 재즈(Jazz), 뮤지컬(Musicals), 컨트리 송/음악(Country Song/Music) 등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서부영화(Western, Western Film)’로 하겠습니다. 최근에 서부영화 ‘빅 컨츄리(The Big Country, William Wyler 감독, 1958년 제작)’를 티브이로 다시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부영화’ 하면 악당의 무자비한 행동에 대한 복수나 보안관의 정의 구현 같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잔인한 총질과 폭력이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합니다. 또 서부 개척자들과 인디언 부족들 간 영토를 둘러싼 반목과 대치, 그리고 이에 따른 전투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빅 컨츄리는 정통 '웨스턴'으로, 텍사스의 광대한 목장주 둘 사이의 불화를 놓고 벌어지는 양측의 대치와 단 한 번의 총격전, 주인공들 간의 몸싸움과 결투,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로맨틱한 이야기 등으로 돼 있습니다. 도널드 해밀턴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는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 1916~2003)과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 1923~2008), 진 시몬즈(Jean Simmons, 1929~2010) 등 연기력이 뛰어난 명배우들이 나오는 만큼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흥미뿐만이 아니라 보고 나서도 뭔가 흐뭇함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서부영화의 매력은 서부개척 당시 미국인들의 정의감과 신사도, 거대한 목장과 광대한 초원, 멋진 말들과 이들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들의 모습 등일 것입니다. 카우보이나 총잡이들의 현란한 복장, 모자, 부츠 등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죠. 광산 개발과 벌목 현장, 은행, 증기기관차 등 미국인들의 초기 생활 모습도 흥미를 끕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서부에 독특한 황량한 풍경이 또 하나의 큰 매력입니다. 선인장류 외에 식물이라고는 거의 없는 매마른 사막과 거대하면서도 기묘하게 생긴 바위산과 절벽, 계곡 등이 주는 이색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게 되니까요. 초기 서부영화에는 배경이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다가 이른바 시네마스코프 등 큰 스크린의 등장과 함께 화면을 멋지게 채워주는 이런 배경이 더 큰 비중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더 도시화된 환경에 놓여진 미국인들도 황량한 서부(Wild West)의 모습에 매료되었을 법합니다.
서부영화는 영화 이전 시기인 1870년대의 무대 엔터테인먼트로서 서부 개척 이야기를 다룬 ‘와일드 웨스트’라는 쇼(Wild West shows)에서 기원하며 초기의 서부영화는 사실과 허구의 혼합, 개척의 낭만화(Romaticization) 등이 특징이라고 하는군요. 당시에는 ‘와일드 웨스트 드라마’로 불리다가 1910년대부터 그냥 ‘웨스턴(Western)’으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1894~1927)에는 서부영화가 다른 장르의 영화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제작되었으며, 서부영화의 전성기(Golden Age)는 존 포드(John Ford),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등 거장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 1940년대와 1950년대라고 하죠.
탭 댄스도 미국 문화에서 뺄 수 없는 매력입니다. 탭 댄스는 탭(Tap)이라는 쇳조각이 앞뒤로 달린 구두창으로 무대나 홀의 바닥을 쳐서 내는 타악기 소리를 이용한 댄스입니다. 탭 댄스 하는 걸 보면 신발이 바닥을 치면서 만들어 내는 소리의 리듬에 빠져듭니다. 대부분의 음악은 성대나 악기를 통해 전달되지만 탭 댄스는 발이 만드는 음악과 이에 따르는 몸짓으로 돼 있어 왠지 재미있고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탭 댄스는 음악에 맞추어 추기도 하지만 반주 없이 발만으로 음악을 만들어 추기도 합니다. 뮤지컬 '애니씽 고우즈(Anything Goes)'에서처럼 다수가 함께 음악에 맞춰 추는 탭 댄스가 즐거움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탭 댄스는 미국 남부의 음악과 ‘아일랜드 댄스(Irish Dance)’의 전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유럽의 ‘스텝 댄스(Step Dance)’가 미국으로 건너와서 아프리카적인 리듬, 스타일과 결합한 것이죠. 상당히 오래전인 17세기에 시작되었지만 19세기 중엽에 와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탭 댄스는 재즈의 등장과 함께 성장해왔는데 크게 봐서 리듬(재즈) 탭과 브로드웨이 탭 두 종류가 있다고 하죠. 전자는 재즈적인 음악성에 중점을 두고 후자는 댄스에 중점을 두면서 주로 뮤지컬 극장에서 연주됩니다. 미국에서 탭 댄스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매년 5월 25일을 ‘내셔널 탭 댄스의 날’(1989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지정)로 기념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 인기 속에 많이 연주되는 재즈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흑인 공동체(African-American Communities)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재즈의 뿌리는 미국 남부 대농원(Plantation)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였던 블루스와, 랙타임(Ragtime), 유럽적 조화, 흑인영가, 찬송가, 행진곡, 유랑극단의 노래, 그리고 댄스 음악 등이라고 하니 참으로 다양한 요소가 섞여서 만들어진 장르라고 하겠습니다. 재즈는 19세기 종반에서 20세기에 걸쳐 하나의 장르로 발전해왔으며 재즈 시대로 불리는 1920년대부터 주요 음악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재즈(Jazz)’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912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서였다고 하는데 당시 어느 야구 투수가 ‘흔들려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볼’이라는 뜻으로 ‘재즈 볼(Jazz Ball)’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Jas Band,’ ‘Jass’ 등으로 쓰인 기록도 있다고 하죠. 100년 넘게 발전해온 음악 장르인 재즈는 그 범위가 넓어서 애호가일 뿐인 저로서 길게 얘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재즈의 요소로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즉흥성(Improvization)이라고 하는데 재즈 연주자는 악보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기분과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각 악기 고수들로 구성된 큰 밴드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재즈 노래를 보고 들으면서 이따금 미국적인 분위기에 젖어 보기도 합니다.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으로 공연되는 장르라서 새삼스럽게 얘기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뮤지컬은 처음에는 뮤지컬 씨어터(Musical Theatre)로 불리다가 20세기 초부터, 줄여서 뮤지컬로 부르게 되었는데 노래와 대화, 연기, 댄스 등을 합쳐서 연극처럼 공연하는 장르죠.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발전해오다가 1927년 브로드웨이에서 오픈된 '쇼보트(Show Boat)'의 전국적인 대성공 이후 대공황기를 거치면서 전반적인 쇠퇴를 겪게 됩니다. 그러다가 ‘오클라호마!(1941)’가 쇼보트의 뒤를 이은 대작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이래로 뮤지컬은 계속 성장해오면서 '포기 앤 베스' '캣츠', '레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시카고' 등 현대판 대작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대작들은 같은 극장에서 수십 년 계속 공연돼오기도 하는데 1981년에 나온 캣츠(Cats)는 아직도 공연되고 있다죠.
마지막으로, 컨트리 송/뮤직을 빼고 미국 대중문화를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재즈의 성지(聖地)가 뉴올리언스라면 컨트리 송/뮤직의 성지는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이죠. 저는 젊은 시절 한동안 컨트리 송이나 포크 뮤직(Contemporary Folk Music)을 좋아하다가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듣게 되면서 이런 장르들은 오래 잊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미국 인기 드라마인 '체서픽쇼어(Chesapeake Shore)'를 보다가 주인공인 컨트리 송 가수가 부르는 노래들을 많이 들으면서 이 장르의 음악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듣고 있으면 가사와 멜로디가 무언가 지나간 시대에 대한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컨트리 장르의 대표 주자인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1989~)가 미국의 '21세기 문화 아이콘'으로서 미국 대중음악계를 풍미(風靡)하고 있죠. 36세의 그녀가 2006년 데뷔 이후 순회공연과 앨범 판매 등에서 번 돈으로 쌓은 재산이 16억불(Forbes誌 추정)이나 된다고 합니다.
미국 대중문화는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경로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아마도 팝송(Pop Song)이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요. 팝송은 너무 대중화돼 있어 특별히 얘기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요즘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대중문화를 잘 받아들여서 우리 나름의 우수한 대중문화를 발전시켜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건대, 문화만큼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문화강국으로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에서 펼쳐나갈 역할이 기대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