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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정원(庭園)
영국식 정원 사진과 삽화가 가득 실린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라는 꽤 묵직한 책이 우연 반 필연 반으로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친구의 집에 갔다가 문득 시선을 끈 그 책을 펼치며 좋아 보인다고 한 말 한마디에 친구가 사서 보내준 책입니다. 시선을 끈 것은 첫째,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이고 둘째, 그의 정원입니다. 한마디로, 버지니아 울프가 정원을 가꾸기도 했다는 데에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죠. 어쨌거나,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선물받는 기쁨을 어디에 비견하겠습니까.저는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가꾼 영국식 정원을 좋아하고 동경해왔습니다. 오래전 영국에 잠시 살 때도, 낮고 편안한 구릉들이 계절 따라 녹색 또는 연갈색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들판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길을 걸으며 얕은 담 너머로 보이는 크고 작은 정원에도 시선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지금도 여행할 때 비행기나 열차의 의자 등판에 꽂혀 있는 잡지에 근사한 정원이 나오면 펼쳐서 읽어보곤 합니다. 꽃이 가득한 멋진 정원은 설렘과 갈망을 일으킵니다.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영국의 모더니스트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20세기 들어 가장 혁신적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작가로 나서기 어렵던 빅토리아(Queen Victoria, 1837~1901) 시대에 일찍부터 작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큰 서재에서 다독을 하면서 문재(文才)를 닦았으며 5세에 이미 글로써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페미니즘 작가라는 레이블이 붙을 만큼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여성의 권리에 천착하였습니다. 엘리어트(T. S Elliot), 포스터(E. M. Forster), 케인즈(J. M. Keynes), 프라이(Roger Fry) 등 당대의 지식인들과 어울리면서 출판업자인 남편과 함께 글과 토론을 통해 당시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 이복 오빠들로부터 겪은 불편한 경험으로 인해 오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30세 전후에는 큰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과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만년에 다시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다가 5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버지니아 울프 부부는 런던에 집을 두고, 오가면서 쉼터로 삼을 별장을 모색하던 중 1919년 영국 남서부 서섹스(Sussex) 지방에 있는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라는 오래된 집을 샀습니다. 제분소이던 그 집에 딸린 정원을 점점 확장하여 아름답게 일구었습니다. 1941년 버지니아 사후 반 세기 동안 남편 레너드(Leonard)는 계속해서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을 가꾸어왔는데 그가 떠난 10여 년 후부터 이 집은 국가관리재산(National Trust)이 되어 세입자에게 임대를 내주며 일반에게도 개방되고 있습니다.버지니아 생전에도 몽크스 하우스는 정원이 아름다운 것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가족·친척이 방문해서 함께 지내기도 합니다. 몽크스 하우스를 방문하고 매혹된 에이사 브릭스라는 한 역사가는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선 시간이 멈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라는 책은 버지니아 울프와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에 매료되어 그 집에서 세입자로 10여 년을 산 캐럴라인 줍(Caloline Zoob)이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쓴 것인데 버지니아 부부가 살던 당시의 정원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많은 사진과 삽화, 도판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또 버지니아의 일기와 레너드의 일기, 그 둘 사이에 오갔던 많은 편지, 부부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또 집안 서류들과 오래된 사진들까지 찾아가면서 정원의 모습과 함께 버지니아의 삶에 대해 정갈한 문체로 기술했습니다.
정원 한구석의 오두막방은 버지니아가 몽크스 하우스로 이사 와서 22년간 줄곧 써온 작품들의 산실이었습니다. 버지니아는 오두막방과 본채 사이에 있는 꽃나무, 과일나무, 채소밭과 오래된 돌들을 지나다니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면서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요지의 유언을 진작 써놓고 어느 날 코트에 무거운 돌을 넣어 집 부근의 강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친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버지니아 생전에 친구가 만들어 준 그의 흉상 앞 석판에는 작품 '파도(The Waves)'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정복당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너를 향해 나를 던지노라. 오오, 죽음이여, 파도가 해변에 부딪힌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 집을 사던 해인 1919년 8월 언니 바네사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몽크스 하우스는 영원히 우리 주소가 될 거야. 정원과 교회의 묘지가 맞닿은 곳에 나는 벌써 우리 무덤을 표시했다니까." 버지니아 울프의 유해는 그로부터 22년 후 재로 변해 몽크스 하우스 정원의 느릅나무 아래 뿌려졌다고 합니다.그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픽션은 거미줄과도 같다. 네 모서리가 삶에 아주 살짝 붙어 있는 그런 거미줄과도 같다. 그 부착 부분이 눈에 띄는 때는 드물다. ( . . . ) 이 거미줄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어떤 존재가 공기 중에 짜놓은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며, 건강, 돈, 사는 집처럼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 부착되어 있다." 버지니아가 삶의 후반을 보낸 몽크스 하우스야말로 그 거미줄의 네 모서리를 이루는 큰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2010년 남편 레너드의 지인이었던 이언 파슨스가 쓴 책, '진실한 마음의 결합: 레너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은 우리나라에서 '우울한 영혼: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이야기'로 번역돼 나왔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충실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음에도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한 작가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야속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단순하지 않은 삶과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로 인해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끊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