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 (2024년 1월 11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 청류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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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4-01-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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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 (2024년 1월 11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Beyond the San Fransisco System)'라는 세미나 제목이 흥미를 끌어서였는지 지난달 중순, 캠퍼스가 아름다운 고려대의 한 강당에서 동 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과 동북아평화센터(이사장 김영호)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세미나에 운 좋게 참석하여 오랜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배움의 즐거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인 훌륭한 환경에서 한나절 공부를 하고 나니 흐뭇하기도 하였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에 관해 잠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2010년 한일 양국 지식인 1,000여 명(일본측 500여 명 포함)이 서명한 한일합방조약 무효 선언(2010.7. 31)이 나온 후 이를 주도한 우리측 김영호 전 경북대 교수(1935~, 산자부장관 역임)와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和田春樹, 1938~)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당시 악화 중이던 한일 관계 등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 상황의 원인을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의 부당성, 불완전성, 변칙성에 있다고 보고 이를 테마로 한 국제회의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상기 지식인 공동성명서 발표 이후 5년여 만인 2016년에 위 제목의 연례 국제세미나를 시작하여 4차까지는 스탠퍼드대 등 주로 해외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이후 코비드19로 인한 휴지 기간을 지나 2023년 12월 15일에 제5차인 종료 세미나를 한국 고려대에서 열게 된 것입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저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조약' 또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말은 귀가 닳도록 들어오면서도 '샌프란시스코 체제(San Fransisco System)'란 말은 그리 자주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말은 1951년 8월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 4. 발효)과, 같은 날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이라는 두 조약을 기점으로 태동하여 현금(現今)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지정학적 상황을 말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이번 세미나는 당초에 전범국 일본을 징벌하려던 강화조약이 도리어 일본을 최대 수혜자로 만들었다는 역설적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실상 일본은 이 두 조약의 체결로 종전 후 불과 6, 7년 만에 전범국 지위를 벗어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적 거점이라는 막강한 위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교섭 기간에 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일본은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 교두보로 부상함과 동시에 전쟁 중 미국을 필두로 한 유엔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맡아 급속한 전후 회복을 이룬 데 이어 경제적 번영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변칙적인 전후 체제에 따라 피해국들은 여전히 영토 분쟁에 휘말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제반 인권 침해에 대한 복구 문제도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근거하여 14년의 험난한 교섭 끝에 체결된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하부구조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이 협정에서도 일본은 한국이 조약 당사국이 아니란 사실을 악용하여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나 배상이란 말을 쓰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일괄해결 식으로 넘어갔던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48개 연합국과 일본이 서명하였다고 하지만 핵심 연합국의 하나인 소련은 서명하지 않았으며 참전국인 중국과 한국은 초대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당초부터 일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데다 영국이 중국과의 향후 관계를 고려하여 이에 적극 동조함으로써 참가가 무산되었습니다. 본토와 대만으로 갈라진 중국도 대표권 문제로 참가하지 못하였으니 이 조약은 출발부터 결함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세미나를 주도해온 한국, 일본, 중국 및 미국, 호주, 캐나다 등 각국의 학자들에 의하면 제2차대전 종전에 즈음해 유럽은 이른바 '얄타체제'에 기반하여 전범국인 독일의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이에 따른 배상과 영토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한 데 반해 태평양전쟁을 치른 당사국 간의 강화조약은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약속과는 다르게 전후 영토 문제 처리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현재와 같이 한·일간, 중·일간, 러·일간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의 대립과 분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전범국인 일본에 대해, 전쟁을 직접 지휘한 핵심 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을 처벌하지 않고 천황의 인간선언만으로 천황제를 유지하도록 한 것을 비롯하여, 전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많은 고위 관리들을 그대로 역할하도록 함으로써 전후 일본 정부가 전전의 가해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최근에 한·일간에 불거진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같은 비인륜적 불법행위에 대한 언급이나 배상 의무 등을 누락함으로써 후일 관련국 간 계속된 과거사 갈등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 등을 비판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상 영토 조항은, 강화조약 교섭 당시 열전(熱戰)으로 발전하기도 한 첨예한 세계적 대치 상황에서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을 제압하려는 전략적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규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냉전 상황에서 미국이 이 도서 지역을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한 조약 규정은 대체적으로 후일 애치슨 라인으로 알려진 대 공산주의 방어선과 일치합니다.

돌이켜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토 조항에서 독도가 누락된 것은 미국의 큰 실책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명시하였더라면 한·일간 영토분쟁의 소지도 없었을 것이며 미국이 오랫동안 그토록 원해오던 한미일 전략적 협력체제 수립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해 8월의 캠프데이비드 선언으로 그러한 체제는 수립되었지만 우리로서는 언제라도 독도 문제가 약한 고리라는 점을 미국에 환기시켜 추후에 독도에 대한 우리 주권의 침해 소지를 없애야 할 것으로 봅니다. 지난 일이지만 이 점에서 1952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독도 이원(以遠)에 평화선을 그은 것은 탁월한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나아가 동 강화조약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한국전쟁의 결과로서 우리측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동맹도 큰 틀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대폭 면제해준 반면에 북한을 비롯한 전체주의 공산세력의 현존하는 위협을 막아내어 한국을 비롯한 자유세계를 지켜오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전쟁 즈음의 한국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미미한 존재였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국전쟁으로 인한 운명의 반전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한미동맹체제도 없었을 것이며 한국과 서방 세계 간의 관계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미·영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의 제반 경험을 토대로 점차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나아가 이들의 도움으로 피땀 어린 전후 복구를 거쳐 힘겹게 극복해온 안보적, 경제적 시련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더 강하게 만들어 오늘날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어떤 학자들은 2023년 8월의 캠프데이비드 선언에 따른 한미일 공조협력 체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 2.0 버전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면서 다소 냉소적인 시각을 보였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결론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진정한 협력은 냉전시대의 유물인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인한 분열과 갈등을 넘어 유럽연합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협력 체제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촉매제로서 우선 2001년 '식민주의' 종식을 주창한 더반 선언(Durban Declaration)을 벤치마킹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새로운 선언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크고 나아가 지역의 평화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는 희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국제정치를 논하는 데서 이상주의적 편향을 반영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기상천외의 평화 파괴 세력이 엄존하며 이를 지원하는 배후 세력들에 둘러싸인 채 노심초사 활로를 찾아야 하는 우리의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현실주의만으로는 국제적 문제에 대처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현실주의자로 유명한 고 키신저 박사(Henry Kissinger, 1923~2023)도 어느 정도의 이상주의를 품지 않은 현실주의는 타당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이상은 품되 기본적으로는 현실주의에 입각하는 것이 타당하고 현명하다고 봅니다. 동아시아의 분열과 마찰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 최적의 조합에 토대를 두고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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