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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3-12-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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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말(馬) 예찬--말은 인간의 친구이자 하인 *정달호 회원이 2023.12.11자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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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예찬--말은 인간의 친구이자 하인

2023.12.11

잠자고 있던 말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깨어났나 봅니다. 승마나 경마에 문외한이 말 얘기를 한다는 것이 어쭙잖은 일이긴 하지만 말에 대한 저의  오래된 관심을 다시금 불러낸 계기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제주시에서 말 산업 진흥을 위한 토론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어 지인인 권무일 작가의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말 산업 진흥보다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토론회는 탐라사(耽羅史)를 주로 연구하는 권 작가가 수년 전에 쓴 '헌마(獻馬)공신 김만일'이라는 소설이 기폭제가 되어 기획된 것으로서 기조 발제도 당연히 권 작가가 맡았습니다. 그의 소설은 조선시대 제주에서 우수한 군마를 집중적으로 사육, 훈련하여 광해군 이래 4대의 왕조에 걸쳐 2천 두 이상의 말을 조정에 바친 입지전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에 대한 저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킨 것은 바로 얼마 전에 입수한 책으로서, 일본인 모토무라 료지(, 1947~)가 2001년에 쓴 '말의 세계사'였습니다. 로마사를 전공한 서양사 학자인 그는 경마에 미칠 만큼 말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말을 좋아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책은 인간과 말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말의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적 천착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는 서양사를 연구하다가 인간의 역사에서 말이 차지해온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제가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마나 승마보다는 말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학을 나온 후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접한 현대 연극이 피터 셰퍼(Peter Shaffer, 1926~2016)의 '에쿠스'였습니다. 사람이 말의 형상을 하고 등장하는 연극으로 최근까지도 상연되곤 하였는데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다는 충격적인 설정의 현대극이라서 그런지 오랫동안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영어 공부를 한다고 사전도 찾고 줄도 치면서 보던 타임지(誌)의 예술·문화란(Arts & Culture)에 실린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의 말 작품들(사진1 참조)이 주는 감동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전통적인 기마상(騎馬像)의 말과 인간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말 위에 앉아 있는 현대인을 조각함으로써 전후의 피폐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말 조각들을 보면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볼 때처럼 현대인간의 왜소함이나 상실감 같은 걸 느끼게 됩니다.

한편, 전통적인 기마상으로는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15세기 말에 밀라노 공(公)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해 제작토록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빈치는 17년간 스케치에 스케치를 거듭하여 이를 토대로 기마상의 본을 만들었는데 당시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20세기 말에 와서야 이 사연을 접한 한 미국 독지가의 지원으로 일군의 조각가들이 다빈치의 습작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기마상을 제작하여 1999년 밀라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다빈치 박물관에 세워져 있는 이 기마상은 7.5미터 높이의 받침대 위에 2미터의 키로 서 있는데 다빈치의 본이 파괴된 후 정확히 500년 만에 제작된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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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마리노 마리니의 말 조각 / 사진 2. 월터 크레인의 백마 그림 / 사진 3. 조지 스텁스의 말 그림

회화에 있어서는 오래전 어느 신문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 '넵튠의 말들'이라는 제목의 말 그림이 너무나 강력한 인상을 남겼기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오려내서 책갈피에 넣어 오래 보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게 되어 아쉽습니다. 구글로 검색해보니 월터 크레인(Walter Crane, 1845~1915)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닷가에 해일처럼 몰려오는 거대한 흰 파도를 수많은 백마들로 표현한 것(사진2 참조)입니다. 넵튠의 그리스식 이름인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神)이자 말의 신이기도 합니다. 그림에 나오는 말들을 보면 그 수려함뿐만 아니라 넘치는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말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는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텁스의 말 그림(사진 3)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하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회화에서는 말 그림을 본 기억이 별로 없지만 중국인들은 과거부터 말 그림을 많이 그려 온 것으로 압니다. 저도 말에 대한 애착이 있어 꽤 오래전 중국 여행에서 말 여덟 마리가 눈발을 가르며 늠름하게 뛰는 무명작가의 수묵 작품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훤칠하게 잘 생긴 말이 달릴 때의 기운 넘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조나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 중 '말의 나라'는 걸리버가 말의 나라에서 겪은 경험을 쓴 것으로서 말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한 문학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돈키호테의 말 로시난테는 늘 주인과 함께하며 충실히 봉사하는 모습이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적토마는 무적(無敵)의 명마입니다. 모르긴 해도 문학 작품에서 말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며 작품에서 다루는 말에 대한 묘사도 다양할 것입니다.

말은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말의 세계사'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말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차나 증기선이 나오기 전까지) 그 수천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말의 속력과 체력은 무엇으로 대체했을까?. . . 인류의 역사에서 말이 담당한 역할을 망각해버린 현대인들이야말로 스스로의 상상력 결여를 한탄해야 할지 모른다."

그는 또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가 역사의 시작 배경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 부분을 인용 소개하면서 야스퍼스가 말의 등장을 다섯 번째 배경으로 들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의 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말은 전차용 또는 기마용으로 등장했다. 말은 인간을 대지로부터 해방시켰고 광범위한 행동 반경과 자유를 주었으며 새로운 전투 기술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말의 훈련과 제어, 기사와 정복자의 용기, 말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등과 결부된 지배자의 고양된 정신을 탄생시켰다(야스퍼스, 역사의 기원과 목표)". 이처럼 말은 역사적으로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말이 없었더라면 몽골제국도 없었을 것이며 말이 끄는 전차가 없었더라면 람세스 2세의 주변국 정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말은 길들여진 이래로 오랫동안 인간의 친구이자 하인으로서 기능해온 것입니다.

해외를 다니면서 시내 중심 광장에 세워놓은 기마상은 물론 골동품상에서 작은 말이나 마차를 조각한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서양 외교관들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작은 기마상이나 말을 소재로 한 다양한 조각 작품들을 거실에 두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말의 기원이 중앙아시아 벌판으로 알려지고 있음에 비해 정작 말에 대한 상찬(賞讚)에서는 우리보다 서양인들이 더 진지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경우 기마민족의 전통이 강하다고 하지만 근세에 들어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천시하는 과정에서 말의 활용이나 말에 대한 애착이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말은 기원전 4천 년경 인간에게 사육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 원시 말은 발가락이 세 개였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한 개의 발굽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말은 무엇보다 달리는 속도가 뛰어난 것이 장점인데 이는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특질이며 말의 눈이 얼굴의 양쪽 끝에 붙은 것 또한 포식자를 재빨리 포착하여 도망치기 좋도록 진화한 결과입니다. 말의 새끼는 태어나면서 바로 걸을 수 있는데 어린 말은 11개월 정도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2세~4세의 성장기에는 어미로부터 훈련을 받고 5세에 이르러서 성마(成馬)가 된다고 합니다. 말의 수명은 통상 25~30년이며 최장수 연령은 56세로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이 제주도였기에 오래전부터 그 말이 유행되었을 것입니다. 말 산지로서 최적이기 때문에 몽골이 고려를 지배할 때도 본토는 위임통치를 하면서 제주도만은 몽골의 직할령으로 삼았습니다. 완만하고 돌이 많은 제주도 중산간에 방목되어 사육된 말이 군마로서도 적합할 것임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자주 전화(戰禍)를 입어온 조선에서 제주인 김만일은 나라에 많은 군마가 필요할 것이라는 통찰 하에 말을 대량으로 사육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가 많은 말을 조정에 바치고 명나라를 포함한 조정 요로에도 공급하였기에 그 공로를 인정 받아 헌마공신이라는 칭호에 이어 정1품 벼슬을 제수받기도 합니다.

돌이켜보건대 조선이 일찍이 군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말 산업을 육성했더라면 주변국의 침략에 맞서 보다 잘 대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권무일 작가는 이 점을 부각하기 하기 위해  그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제주에는 중산간을 중심으로 아직도 옛 목장들과 군마 사육장 터가 꽤 남아 있습니다. 인간을 위한 말의 효용성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승마나 경마 등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도 제주의 목장에서 말들이 많이 뛰어다니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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