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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3-09-1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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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제주 바다와 해녀, 그리고 고희영 감독 * 이 글은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 2023.09.13 자)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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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와 해녀, 그리고 고희영 감독

 

고희영 감독의 최신작 다큐영화 '물꽃의 전설'10세에 시작하여 87년간 물질을 해온 한 해녀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해녀 일을 하며 살아온 현순직 해녀는 은퇴 후인 요즘도 매일 바닷가에 나가서 썰물에 드러난 바위를 들춰 작은 해산물을 줍거나 땁니다. 그는 물 밖에 있을 땐 늘 바다를 응시합니다. 물질하던 그 바다를 넘어 멀리 물마루(수평선의 순우리말)에까지 시선을 던지곤 합니다. 성산읍 삼달리 바다가 고향인 97세 해녀 할머니는 수평선 너머가 내내 궁금했을 겁니다. 그는 독도 앞바다에서 3년간 배에서 기거하면서 물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완도, 진도, 백령도 앞바다 등 가보지 않은 바다가 없으며 독도에서는 물질 중에 동생이 죽는 사고도 지켜봐야 했다고 담담히 회고합니다.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일 수 있지만 해녀에게 바다는 극한의 작업장일 뿐입니다. 삶의 한계에서 쉼 없이 87년을 작업해오면서도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저는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아기 해녀, 중군, 상군을 거친 그는 '대상군(大上)'으로 불렸습니다. 물질에서는 그가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해녀를 할머니로 부른다면 현장을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됩니다. 해녀들 사이에는 누구든 연장자는 그냥 '삼춘'일 뿐입니다. 현순직 해녀는 영원한 현역이었기에 할머니가 될 여유도 없이 줄곧 바다와 함께였습니다. 바다는 그의 고향이자 영혼의 쉼터입니다.

 

영화에서 조연(助演)을 맡은 여성은 30세에 물질을 시작한 젊은 해녀 채지애(40)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까지 다니다가 바다가 주는 매혹을 잊지 못해 고향으로 내려와 겨우 현실을 받아들인 어머니와 함께 물질에 나섭니다. 해녀촌에서 젊은이는 자연스럽게 어르신을 보살피게 되고 어르신은 평생의 물질에서 얻은 지혜와 노하우를 젊은 해녀에게 전수합니다. 큰 줄거리는, 현순직 해녀가 자기만이 아는 바닷속 어느 계곡에 핀 빨강 파랑의 물꽃을 찾아 젊은 해녀와 함께 나서는데 막상 물속에 들어간 젊은 해녀는 그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현순직 해녀가 보았던 그 물꽃들은 피폐해진 바다와 함께 시들고 사라져 이제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것이죠.

 

저는 10여 년 전 제주영화제에서 고희영 감독의 첫 작품인 '물숨'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이래 그의 작품 활동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물숨은 해녀들이 물속에서 쉬는(참는) 숨으로, 자기 숨을 넘어서는 순간 쉬게 되는 '욕망의 숨'을 말하며 결국 생명의 끈을 놓는 걸 의미합니다. 이를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지만 영어 자막은 말 그대로 'Breathing Under Water'입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화제를 모은 뒤 바로 해외로 나가, 스웨덴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여전히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고희영 감독은 다큐영화 부문에서 국내외적으로 우뚝선 인물입니다.

 

그는 영화인(cineast)으로서 업()을 쌓기 위해 한동안 베이징에 가 있다가 40대 초반에 고향인 제주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무심히 시간을 보내던 그는 해녀들의 물질 장면을 보고 문득 깨닫습니다. 자기가 할 일이 바로 해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임을 말이죠. 그는 그길로 바로 작업에 착수합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업에 바쁜 해녀들을 영화 찍는 데에 동원한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수중 촬영이 많은 험난한 작업 환경에서 해녀 영화를 만든다는 게 엄청난 도전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숨'이 큰 성공을 거둔 후 고희영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더 만듭니다. 고려다완의 복원에 일생을 바친 조선의 마지막 도공 천한봉(千漢鳳, 1933~2021) 사기장(沙器匠)에 꽂혀 그의 작업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불숨'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 불가마를 촬영하는 작업 또한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마 속의 도자기가 1,300도의 고열을 감당하면서 멋지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불이 숨을 잘 쉬어야 합니다. 이를 불숨(The Breathing of Fire)으로 표현함으로써 사물마저 하나의 생명으로 다룬 그의 뛰어난 문학적 감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830일 전국적으로 대개봉된 '물꽃의 전설'은 그의 네 번째 작품으로, 첫 작품인 '물숨'의 후속편으로 봐도 될 만큼 두 작품에는 하나의 코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제주 바다와 해녀를 향한 애정어린 시선입니다. 고 감독의 해녀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잘은 몰라도 제주 여성이라면 어머니든 이모든, 친척이나 지인 중 해녀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주 여성은 누구나 해녀(현지에서는 '잠녀(潛女)'라고도 함)라는 제주적인 현상에서 동떨어져 살 수 없으며 고 감독 역시 마음속 깊이 해녀를 품고 지내왔을 것입니다. 그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기록해 책으로 내기 위해 지금도 어르신 해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해오고 있습니다.

 

해녀는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해안과 섬에도 있고, 가까이는 일본에도 있었지만 제주 해녀는 제주의 삶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아프고 슬픈 역사와 때로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교차된 파란만장의 삶을 살아낸 억척스런 여인들이 제주해녀입니다. 요즘에는 사진전이나 미디어에 자주 소개됨으로써 해녀가 멋지게 보여서 그런지 제주의 해녀 학교에는 젊은 여성들과 외국인까지 와서 물질을 배우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나날이 생사의 갈림길에 나서는 해녀의 삶이 결코 낭만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곳간을 내주는 바다는 고마우면서도 한편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해녀들은 봄에 물질을 개시하기 전에 용왕님(바닷속 모든 것을 주관)과 영등신(바람을 주관)을 모시는 굿으로 안전과 풍요를 기원합니다.

 

고희영 감독은 영화인이기 이전에 사진작가이자 문학인입니다. 저는 제주 바다를 이토록 아름답게, 이토록 절실하게 그려낸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눈발이 내리치는 바다, 안개가 짙게 낀 바다, 칠흑의 밤바다, 달빛이 은은한 바다, 노을 진 새벽 바다, 윤슬이 반짝이는 낮 바다... 모든 바다는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용(變容)하는 바다, 고 감독이 포착한 절정의 그 순간들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바다들을 해녀들은 몸으로 받고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어느 장면에서 현순직 해녀는 위험천만의 순간들을 회고하면서 그래도 물질로 세 자녀 다 대학 시키고 제주시에 집까지 사주었다고 자랑스레 말합니다.

 

해녀의삶, 그것은 운명일까요? 제주의 해녀 노래에 "이어도 사나"가 있습니다. 이어도는 현존하는 커다란 암초이지만 제주 바다에 기대어 먹고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도 사나', 언젠가는 그 이상향으로 가게 될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다짐하는 후렴구입니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어이~~ 어이~~/저어라 저어라(배를). . ./쳐라 쳐라 (파도야). . . /어머니 왜 나를 낳아 이 고생 시키나 . .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어이~~ 어이~~

 

대략의 내용을 풀어서 소개한 것일 뿐이지만, 이 노래만 들어도 해녀는 바다와 함께하기로 운명 지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해녀 채지애는 도시 생활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멀미가 고향의 바닷가에 와서야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어부 못지않게 해녀는 바다와 뭍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제주 해녀의 삶에 천착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준 고희영 감독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더불어 '물꽃의 전설'을 보지 않고 제주 해녀를 아노라고, 제주 바다를 아노라고 말하지 말라고 단연코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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