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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2-09-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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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생선 요리 좋아하세요? (2) 이 글은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9월 13일자)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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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요리 좋아하세요? (2)

2022.09.13

지난달 뜻밖에도 울산에서 민어 맛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동해안에서 민어를 먹어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간 민어를 먹을 때마다 운수가 없어서 그랬지 싶은데 최근 기억나는 두어 건 모두 실패였습니다. 무교동 어디에서 소문난 집이라 해서 민어 코스를 먹어봤는데 영 아니었고 강남 요릿집에서 얻어먹은 민어 요리도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여름철 보양식이니 어쩌니 하는 민어 예찬이 기대를 부풀려서 그런지 여태 민어를 잘 먹어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동해안 민어를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나니 민어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군요.

​올여름 신안군 임자도 해역에 민어가 대거 몰려와 어부들이 큰돈을 벌었다는 뉴스가 있을 만큼 민어가 풍어였다니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학교 다닐 때 부자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처음 먹어본 민어 맛이 여전히 혀끝에 감돌아 이따금 그 맛을 다시 찾아보려는 막연한 갈망도 있었습니다. 제주에서도 민어가 나는데 주로 말린 것을 사서 구워 먹는 식이라 맛은 좋아도 민어를 잘 먹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민어는 생선 중 귀족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에 민어를 먹지 않으면 여름 같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일본에서 7월에 '하모(갯장어)'를 먹지 않으면 여름을 보낼 수 없다고 한다는데 우리의 경우는 하모 대신 민어인 셈이죠.

먼저 글 '생선 요리 좋아하세요? (1)'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는데 어떤 분은 생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네, 하시기도 했죠. 그런 수준은 아니랍니다. 이따금 특정 물고기를 검색할 때도 있지만 주로 신문 맛칼럼이나 맛기행에 나오는 특기할 만한 생선 요리를 기억해 둔다든가, 또는 어쩌다 보게 되는 먹방 프로그램에서 생선요리를 다룰 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정도입니다. 식당에 가서 호기심이 가는 메뉴를 골라 먹고 나서는 셰프에게 재료나 조리법에 대해 물어보기도 합니다.  

근래 제가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생선은 볼락입니다. 볼락은 쏨뱅이목 양볼락과의 대표 어종으로서 등지느러미가 뾰죽뾰죽하면서 탄탄하게 붙어 있는, 첫눈에도 잘생긴 바닷고기입니다. 야행성으로서 눈이 크며, 육식성으로 갑각류와 다모류, 작은 어류들을 잡아먹으니 볼락은 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요. 해조 군락이 있는 암초지대에서 지내다가 수면 가까이 떠올라 머리를 위로 하고 서서 헤엄치는 신기한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볼락류(우럭과 쏨뱅이 포함)는 난태생(卵胎生)이라 수정한 후 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새끼로 부화하여 바다로 내보낸다는 것이죠.

거제도에 처가가 있던 시기에는 자주 바닷가로 나가서 볼락회나 볼락구이를 즐겨 먹었는데 매우 맛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친구의 안내로 장승포에서 20센티 정도의 볼락과 그 비슷한 크기의 참돔 구이를 함께 시켜 둘을 비교하면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돔보다도 볼락의 맛이 한 수 위였기에 그후로는 볼락이란 생선을 눈여겨보면서 찾아 먹는 편입니다. 요즘은 마트에 나오는 미국산 냉동 볼락을 가끔 사서 먹는데 급냉동의 신선도가 높아 프라이팬에 구워 레몬만 쳐서 먹어도 볼락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주에 살면서 자주 먹는 생선은 갈치(hairtail fish)입니다. 갈치는 예전에 그리 비싼 생선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제주 관광이 붐을 일으키면서 갈치 요리의 인기가 올라감으로써 귀한 생선이 된 것 같습니다. 구이 한 토막에 2, 3만 원을 호가하니 이젠 식당에 가서 잘 구운 갈치를 먹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요리 방식은 구이보다 조림이라 할 수 있는데 요즘은 통갈치조림이라는 메뉴가 나와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반 갈치조림처럼  둥근 모양의 냄비가 아니라 갈치를 통째로 넣을 수 있게끔 긴 직사각형 냄비를 사용하는데 갈치를 밑에 깔고 문어, 새우, 전복, 조개 등을 넣어 채소와 함께 끓여 냅니다. 우선 모양새가 압도적이어서 먼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다 갖가지 고급 재료가 잘 어우러져서 맛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생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갈치는 선도(鮮度)가 높아야 제맛을 낼 수 있으니 그런 집을 잘 찾아서 가야 합니다. 제주에서는 선도 높은 우럭이나 취어 조림도 갈치조림 다음으로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제주 특유의 갈칫국도 먹어볼 만한 요리입니다. 전혀 비리지 않고 매콤 시원한 맛이니 걱정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당일에 들여온 신선한 갈치를 써야 국 맛이 제대로 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주 갈치를 은갈치로, 목포 갈치를 먹갈치로 부르는 건 전자는 낚시로 잡아서 표면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후자는 그물로 잡다가 은빛이 다 벗겨져 검은색이 드러나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 이상의 다른 차이가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먹갈치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꼭 목포에 들러 먹갈치 체험을 온전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있습니다.

​갈치가 헤엄칠 때는 해마(海馬)처럼 머리를 위로 하여 서서 헤엄친다는 건 아실 겁니다. 오래전 밤중에 프랑스 어느 바닷가에서 갈치를 낚은 적이 있는데 방파제 불빛에 비친 갈치는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서양인들은 아예 갈치를 먹지 않거나 우리처럼 즐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뼈 발라내기가 여간 일이 아니어서 그럴지 모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갈치의 잔뼈를 발라내기란 쉽진 않은 일이겠죠. 우리처럼 젓가락으로 잔 뼛가지를 다 발라내고 먹을 줄 아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제 1차대전 기념관을 보러 찾아갔던 벨기에 이프르(Ypres, Ipre)에서 뱀장어 스튜를 먹어본 적이 있으니 아마도 어디선가는 갈치도 이런 식으로 요리해서 먹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생선 얘기를 하면서 중요한 생선 하나를 빠트렸습니다. 조기가 우리 밥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너무 흔해서 그랬던지 깜빡했습니다. 잘 말려서 굴비로 먹기도 하고 찜이나 조림으로 먹기도 하는 조기를 빼면 우리의 생선 이야기가 온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조기는 남쪽에서 제주도, 추자도, 흑산도, 서해를 거쳐 연평도까지 올라가 알을 낳는다고 하죠. 이 지역에서는 한때 추자도가 참조기 주요 어획지였는데 지금은 더 남쪽으로 내려와 제주 해역이 조기잡이의 주무대가 되었습니다. 조기는 중남미 등 외국에서도 코르비나(corvina)라고 해서 꽤 인기가 있는 생선인데 그들이 먹는 것이 새우 같은 고급 먹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명절 선물로 영광굴비를 최고로 칠 만큼 조기는 대단한 생선이지요.

​그러고 보니 고등어도 너무 소홀히 다룬 것 같습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서귀포 모슬포의 항구 식당에서 최고의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습니다. 식당가가 바로 바닷가에 있는데 그 앞에는 어선들이 즐비합니다. 바다에서 바로 잡아 오는 고등어를 결따라 크게 썰어서 내기에 신선할 뿐 아니라 모슬포 앞바다의 물살이 세서 식감이 좋은 게 장점입니다. 많은 식당 중 어느 한 집 앞에만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어 대기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전통 간장양파 소스와 다르게 미나리를 많이 섞어 넣은 초장을 소스로 쓰기 때문에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맛에 예민한 때문인지 식당별로 맛 차별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맛의 세계도 전쟁이라 할만큼 경쟁이 심한데 창의나 성의가 뛰어나지 않으면 퇴출되기 십상입니다. SNS 소통에 강한 젊은 세대들이 맛에 더 민감한 것 같아 세태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생선요리에 대한 작은 결론이라고 한다면, 모든 생선요리는 첫째 선도가 중요하며 둘째 맛있는 좋은 생선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며, 그다음으로 요리사의 손맛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요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재료가 신통치 않으면 명셰프도 별수가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티브이 프로그램에 전국을 돌며 알려진 맛집이나 전통요리 명가를 찾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호스트)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다 보니 유명인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최불암이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 '허영만의 백반 기행', '고두심이 좋아서'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이들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주인공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온갖 특별하고 맛있는 요리를 다 먹어볼 수 있으니 말이죠.

​이번에도 공연히 이야기가 길어져서 연체류나 어패류, 갑각류에 대한 얘기는 다음 편으로 넘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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