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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1-08-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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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아름답고 값진 작은 음악회 2021.08.05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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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값진 작은 음악회

2021.08.05

지난달 하순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 참석하여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지방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는 코로나 감염 상황에서 음악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던 터에 불과 이삼 일 전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음악회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찾아갔습니다. 그날은 마침 집안에 다른 일로 차가 필요하였기에 저는 자동차를 집에 놓아둔 채 일찌감치 시내버스를 타고 음악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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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13년째 살면서도 들어보지 못한 장소였습니다. 실은 그 전 두어 번 같은 장소에 초청이 있었음에도 갈 엄두를 내지 않던 곳인데 '제주 Art-in 명도암'이라는 근래에 생긴, 제주 북중부 조천읍 내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놓친 기회 중 한 번은 지인의 사진전이었고 두 번째는 역시 지인의 그림 전시회였는데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번번이 미안한 마음을 간곡하게 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은 작심하고 찾아간 것인데 주변에 도착하고 보니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차분한 동네였습니다. 숲속 한편에 자리 잡은 갤러리 건물은 주위와 잘 어우러지는 편안한  3층 구조였습니다. 지하에는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으며 지상 1, 2층이 갤러리, 3층이 수장고 겸 무대 준비실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작은 음악회는 여느 음악회와 다름이 없었으나 프로그램이 비교적 참신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작곡가 중 매우 친숙한 이름들보다는 익숙하기는 해도 작은 음악회에서는 그리 자주 볼 수 없는 그런 작곡가들이었습니다. 체르니(Karl Czerny 1791~1857),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 쇼스타코비치(Dmitri Schostakovic 1906~1975) 핸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할보르센(Johan Halvorsen(1864~1935), 브루흐(Max Bruch 1838~1920), 김현민 등으로 시작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깊은 감동을 준 핸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외에는 자주 듣는 곡들도 아니어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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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 앙상블(Eclesia Ensemble)로 불리는 이 콰르텟의 멤버는 바이올린 지은혜, 비올라 한 넬리(Khan Nelly), 피아노 염희선, 그리고 호른 유하늘이었는데 호르니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따님이었습니다. 앞 두 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대 출신이어서 주로 구미에서 공부한 연주자로 구성된 그룹들에 비해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201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어 더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갤러리 공간은 높은 천정이어서 소리의 울림이 좋았고 저녁노을이 뒤창에 비쳐서 멋진 무대 효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은 콘서트의 타이틀이 '환경사랑 음악회'로서 수익금을 전액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에 기증한다는 것이 음악회를 더욱 빛나게 하였습니다.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를 '곶자왈'은 제주도 도처에 있는 용암혈 지대의 야생 숲을 말하며 브라질의 아마존처럼 제주도의 허파 역할을 하는 숲입니다. 곶자왈재단은 개발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유지 곶자왈을 매입하여 자연 상태로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입니다. 사실 저도 지난달부터 이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게 되어 제주도민들의 환경 사랑과 자연 사랑에 한 몫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여서 이런 공익적 예술 활동에 더욱 관심이 갔던 것입니다.

곶자왈재단에 기부하기 위해 음악회를 기획했다는 데서 이 앙상블의 주역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마음씨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데에 한 몫을 하기 위해 음악가들의 재능을 기부한다는 것이니 얼마나 가상한 일입니까. 그것은 시대의 부름에 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세상은 기후재앙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으며 코로나 감염병도 이와 무관치 않은 상황인데 작은 노력이지만 환경보전이란 공동체의 거대한 목표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들의 이번 음악회를 매우 값진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번 음악회를 '아름답고 값진 작은 음악회'로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결핍된 공동체의식과 공동선이란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모범이 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상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자발적인 공동체 기여 활동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제주에 '위즈덤시티((Wisdom City)'라는 민간 교육운동 단체가 있는데 제주 지역 전체에서 대학생 30여 명을 선발하여 연중 매 토요일 고전 읽기와 인성 함양에 집중하는 교과를 운영합니다. 자발적인 민간 기여금과 약간의 공적 보조로 재정을 운영하는 이 단체의 후원회 명단을 보고 크고 작은 기부를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 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예로서, 기업을 하여 번 돈으로 학생들의 과학 마인드를 높이기 위해 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하여 2천여 개에 달하는 전국 고교 등 교육기관에 유수한 과학서적을 기증해오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알게 모르게 자본이나 재능으로 사회공헌을 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진국 사회의 작동 원리가 공공 주도보다는 민간의 자발적 사회 공헌임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이른바 사회적 자본으로 불리는 무형의 자본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자본, 경제적 자본만으로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는 없습니다. 민간의 자발적 공헌, 즉 사회적 자본이 없이는 여느 선진국처럼 안정되고 튼튼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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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번 '환경사랑 음악회'는 하나의 작은 등불이었습니다. 언젠가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은 미국이 위대한 것은 정부의 노력에 앞서는 민간의 '수많은 등불(Thousands of Lights)'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뭉클하면서 선진국의 정수(精髓)를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스스로 나서서 공동체를 위해 뭐라도 한몫을 하려고 나서는 그런 사회가 곧 선진국 사회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번에 환경 사랑 음악회를 개최하여 우리 사회에서 또 하나의 등불이 된 음악가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냅니다.

왼쪽부터 필자, 김범훈 곶자왈재단 신임 이사장, 연주자들, 김국주 곶자왈재단 전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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