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살, 동백꽃은 기억한다
매화나 모란, 국화 못지않게 동백꽃을 노래한 시가 많습니다. 선홍빛 그 붉음 때문일까요? 댕강 꽃 떨어지는 그 모습 때문일까요? 가꾸지 않아도 무성히 피어나는 고운 그 꽃 때문일까요? 많은 동백꽃 시 중에서 저의 가슴을 저며오는 시들은 피처럼 붉은 동백의 빛깔을 노래하거나 흰 눈 위에 피어나는 동백의 아련함이나 그 질 때의 결연한 모습을 읊은 것들입니다.
누이야/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들어본 적 있느냐/
사각사각 맨발로 하얀 눈 한겨울 캄캄함을 밟아올 때/
제주바다는 이리저리 불안을 뒤척이고/
찬바람을 몰아다니던 낙엽 소리 돌돌 잠재우며/
밤새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아련히/
나의 잠 속에 묻혀가고 있다.
(문충성, 동백꽃)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문정희, 동백)
(전략)
가슴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용혜원, 선운사 동백꽃)
몇몇 시를 음미할수록 동백이 예사 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절제된 열정, 기다림과 애잔함, 돌연한 죽음 등이 동백꽃에 배어 있습니다. 꽃말도 여느 꽃들처럼 몇 글자로 딱 부러지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하리!''라는 꽃말은 동백꽃에 얽힌 한 젊은 아낙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머리에 동백꽃을 꽂은 비올레타의 애잔한 사랑도 이른 죽음으로 끝납니다.
애절, 애잔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 붉은 동백꽃이 제주 4.3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동백이 지켜보는 들판에서, 산기슭에서 이유도 모른 채 스러져간 수많은 목숨을 기리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꽃이 있을까요?
동백꽃을 4. 3의 상징 꽃으로 삼게 된 것은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가 1990년대 말에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화폭에 담아낸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4.3행사 참가자나 도민들은 이 꽃 문양의 상징물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성은 왼쪽 가슴에 배지를 달고 여성은 펜던트 형태로 목에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에 유럽 사람들이 개양귀비(poppy)를 가슴에 다는 것과 같은 발상입니다. 살상의 현장에서 처참한 죽음들을 목격해온 동백꽃이나 양편 참호 사이 노맨스랜드(no men's land)에 온통 피어나 젊은 죽음들을 지켜본 개양귀비는 다 같이 선홍 또는 진홍입니다.
지난달 하순에 열린 제주포럼(6.24~6.26)은 3일의 회의기간 중간에 6.25가 끼어 있음으로써 우리 역사와 관련해 특별한 연출을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은 저로서는 열두 번째 참가하는 제주의 큰 국제 행사로서 다보스나 보아오 포럼보다는 규모가 작고 역사도 짧지만 20여 년, 16회를 이어오면서 나름 명성 있는 국제포럼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대재앙으로, 예년 같은 대면 회의가 아니라 비대면과 대면(on-line and off-line)의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단상에는 현장에 오지 못하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정교하게 준비된 홀로그램으로 출현하거나 현장의 패널들과 함께 자유롭게 화상 토론을 벌이기도 해 과연 한국이 디지털 선도국임을 증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방역으로 회의장 입장 절차가 매우 복잡하여 짜증스러운 면이 있었으나 6.25 동백꽃 헌정 행사라는 신선한 충격으로 인해 이 짜증은 일시에 해소되었습니다. 회의장으로 가는 길목에 여직원이 동백꽃 조화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서 있고, 그 앞에 전문 사진사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거길 지나가는데 여직원이 다가와 6.25 희생자들에게 동백꽃을 헌정하겠냐고 물어봐서 ‘갑자기 웬 6.25라니’ 하면서도 뜻하지 않게 6.25를 만나는 경이로움을 경험하였습니다. 왼쪽 가슴에 큰 동백꽃 하나를 달고 또 하나의 꽃을 참전국들을 아우르는 세계지도에 갖다 붙이는 ‘연출’이었습니다.
오래전에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다큐영화를 본 적도 있는데 지금은 아예 ‘잊어버린 전쟁’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6.25가 이처럼 당당하게 등장한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국가 추념행사도 없는 6.25 전쟁, 석연찮은 연평도 해전과 천안함 행사 등으로 늘 무거워야만 했던 가슴에 홀연히 불어온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제주 4.3 추모의 동백꽃이 왜 6.25 희생자 추념에도 등장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살상의 현장을 목격한 말 없는 동백을 추념의 상징물로 삼은 게 6.25와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백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6.25 희생자 추념에 그 꽃을 갖다 쓴다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또 앞으로도 이런 기획이 얼마간 계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두 사변 공히 많은 국민이 피를 흘린 대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동백꽃 상징은 대량살상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동백꽃이나 유럽의 개양귀비꽃은 다 진한 붉은 빛으로서, 처참한 비극에 대한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제주포럼의 마지막 세션 또한 제주 4.3에 관한 것으로서 도지사와 국내 유수 학자 등이 참여하여 평화 포럼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통틀어서 보면 1950년에 발발한 6.25와 1947/1948년에 시작된 제주 4.3이 나란히 배치된 모양새였습니다. 기획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보지만 저에게는 우연치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먼저 일어난 4.3 사건은 이름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는 정명론(正名論)이 대두되는 등 아직도 마무리해야 일이 남아 있지만 최초 거론된 후 20여 년이 된 올해에 관련 법의 전부 개정을 이루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국민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동족 간의 살상이란 측면에서 두 사건은 공통된 점이 있고 깊이 들어가면 서로 연관돼 있기도 합니다. 6.25와는 다르게 4.3은 미국의 역할 등 더 규명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이 정도 정리되었으면 더 이상 제주 4.3에 대한 과도한 논쟁은 접어도 된다고 봅니다.
강요배 화백의 그림 한 폭이 가져온 여운과 여파를 생각하면 제주 4.3의 의미는 이제부터 정치적 논쟁보다는 예술적 승화를 통해 우리의 가슴에 더 깊이 와 닿을 것으로 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그런 것처럼, 역사는 종종 예술의 옷을 입고 더 강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제주 4.3과 관련해서도 수년 전에 나온 '지슬(감자)'이라는 영화(오멸 감독)가 그랬고 2년 전부터 제주와 전국 각지에서 전시되고 있는 4.3희생자 유물 사진 작품전 '기억의 목소리'(고현주 사진, 허은실 시)가 그렇습니다. 저는 공식 보고서보다 이 두 예술 표현에서 제주 4.3에 대해 보다 적나라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주에서는 이런 예술적 작업들이 활기를 띠고 있어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강요배의 '동백꽂 지다'
차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4.3, 4.19, 5.18 로 이어지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곡을 교향악 규모로 만들어 관련 행사 등 각 계기에 연주한다면 이런 비극들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온 국민에게 치유와 평온을 안겨줄 것입니다. 예술적 승화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화합의 긍적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