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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천
  • 21-03-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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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우리 사회도 엄한 '가훈'이 필요하다. 정달호 회원이 2021.03.05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본문

우리 사회도 엄한 '가훈'이 필요하다

 

 

해는 늘 바뀌지만 사람들은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합니다. 각오는 말로도 할 수 있지만 글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새해의 각오, 새해의 맹세 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라면 새해의 계획 등으로 부릅니다. 각오나 맹세는 평소의 신조나 소신일 수도 있고 항상 바람직하게 여기는 덕목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잘 지켜서 더 이상 명심할 필요가 없는 각오나 맹세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새해의 각오나 맹세가 확 바뀌는 경우는 드물 듯합니다.

 

저의 경우도 작년에 세운 각오를 올해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각오대로 살지 못한 것 같아서입니다. 저는 작년에 새해의 맹세로 1)비열하지 않기 2)옹졸하지 않기 3)인색하지 않기 등 하지 않아야 할 것 세 가지를 정했습니다. 다른 덕목을 추가해볼 생각도 해보았으나 대체로 이 범주에 포함될 듯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맹세를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써서 붙여야 할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우선 제가 글씨를 잘 못 쓰는 데다, 쓴다 한들 이걸 집 어디에다 붙일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사실은 이 나이에 굳이 그런 걸 써서 방 어딘가에 붙여놓는다는 것이 좀 계면쩍은 일이고 방문자가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유심히 읽어보는 것도 좀 내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일기장 맨 앞장쯤에 써놓으면 되리라 싶군요.

 

개인적인 맹세는 다들 이런 식으로 하겠지만 단체의 맹세도 있습니다. 단체의 맹세는 해마다 바뀌지 않고 대체로 영구적입니다. 학교의 설립자나 회사의 창립자 또는 그들의 의뢰를 받은 명망 있는 인사가 교훈이나 사훈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직장이 관청이어서 맹세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하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의 교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초등, 중등 것은 몰라도 고교 때의 교훈은 여전히 생생하죠. '지성(至誠), 강건(剛健), 활달(闊達), 협동(協同)'인데 한글로만 기억하다가 졸업 50주년 때 모교에 가서 한자를 보고 그간 제가 알던 것과 한자가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성, 강건을 知性, 强健으로 알고 있었음)

 

이웃 학교의 교훈에 대해 들은 바 있는데 상당히 유명한 이 학교의 교훈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고 합니다. 매우 훌륭한 교훈으로서 이 세 가지를 다 합하면 '지성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지성인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진정한 지성인이 되려면 자유와 문화와 평화를 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지혜와 용기를 더해야 지성인으로서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에는 훌륭한 사회인은 많아도 훌륭한 리더는 보기 드문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몇몇 오래된 대학교들의 교훈을 살펴보면 역시 학문의 전당답게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배지에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고 씌어 있죠. 고려대는 '자유, 정의, 진리' 그리고 연세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입니다. 대학 과정은 학문을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우선 진리 탐구에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잠시 신세를 졌던 옥스포드 대학교의 교훈은 그냥 'VERITAS(진리)'입니다. 자연과학에서나 인문학에서 진리가 갖는 범위나 무게가 같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문학에서는 진리보다 진실이란 말이 더 와 닿을 듯합니다. 진실도 번역하면 'VERITAS'가 될 테죠. (영어에서는 진리, 진실 다 'truth'로 번역됨)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각 가정에는 아이들이 따라야 할 가훈이 있습니다. 가훈도 교훈처럼 집 어딘가에 써 붙여놓는 게 보통인데 솔직히 저희 집에서는 가훈이 써 붙여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써 붙여놓은 가훈은 없어도 아버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은 ''훌륭한 사람이 돼라!"였습니다. 어릴 적 이 말씀은 꽤나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노벨상이나 무슨 훈장 같은 것을 타는 사람이라야 훌륭한 사람일 것 같았습니다. '훌륭함'이란 게 무엇인지 어린 마음에 구체성 있게 와닿지 않아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훌륭함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뚜렷해지긴 했지만 지금도 '훌륭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면서 살고 있는 편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위한 가훈 같은 걸 써서 붙여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훌륭함'에 대한 고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훌륭함을 구체성 있게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지금 굳이 가훈을 써 붙이고자 한다면 저는 '인정, 도리, 배려'라고 쓰고 싶습니다. 살다 보니 훌륭함은 명예나 권력이나 돈이 아니고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자질을 갖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정 있고 도리 지키고 남을 배려하면서 산다면 그것이 곧 훌륭한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개 훈()이나 표어 등은 세 마디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프랑스 혁명 때의 구호, '자유 평등 박애'일 것입니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자유와 평등만큼 많은 사상가들의 추구 대상이 되고 다양한 사회운동가들의 구호가 된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사상은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는 동시에 사회 갈등의 요인이 돼 오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박애'는 역사에서 크게 역할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박애를 쉬운 말로 표현하면 배려나 사랑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배려나 사랑이 있어야 사상이나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배려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가훈, 교훈, 사훈을 새기며 사는 개인은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보다 더 큰 조직의 한 부분입니다. 개인이 속한 가장 큰 조직은 국가 또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국가사회도 가정처럼 어떤 '()'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양의 경우 오랫동안 기독교가 보편화되어 있어 성경 자체가 그 사회의 ''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물론 사정이 달라져서 서구사회도 그 정신적 기조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경우 유불선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왔지만 상반된 가치들이 경합할 만큼 복잡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 수많은 환란과 핍박을 겪으면서 심성이 거칠고 인성이 모질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 사회의 훈()을 정한다면 저는 '정직, 공정, 배려'로 할 것을 제의합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부정직과 불공정이 판을 치고 배려가 너무 적은 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올해 신축년부터는 공인들부터 시작하여 정직, 공정, 배려를 가훈처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추슬러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가치를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곧 일류국가로 가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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