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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1-01-2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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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추억으로 가는 안동역 *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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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는 안동역   

2021.01.28

저는 안동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고교로 진학한 후 대학 졸업 때까지 방학 때만 고향을 찾았습니다. 소년기에 서울로 와서 대도시 이민자로 지내오면서 지금껏 서울 사람도 안동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고향을 찾지 않다가 7, 8년 전에 중시조(中始祖) 묘소 인접한 터에 가족 묘지를 조성한 이후로는 시사(時祀) 참례차 매년 가을 고향을 방문합니다. 길어야 1박 2일이니 고향과 다시 친밀해지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쩌다 시간이 난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달라진 고향의 모습에 쉽사리 정을 붙이진 못하였습니다. 초등, 중등 동창들이 몇 있지만 매번 만나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고향은 가깝고도 먼 곳이 돼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차편으로 고향을 다녔는데 대학시절까지도 안동행 기차는 증기기관차였습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흰 증기를 하늘로 내뿜으며 굉음의 기적소리와 함께 질주하는 기관차가 그리워집니다. 그 기관차가 오고 가던 안동역이 가수 진성이 부른 노래 때문에 어느 역 못지않게 유명해졌습니다. 무명가수의 '안동역에서'가 그렇게 큰 히트를 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성의 안동역은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눈이 무릎까지 내린 추운 겨울밤, 기다리는 님은 오지 않고 어둠 속 역사(驛舍) 앞에 망연히 서 있는 사나이 . . . 대중가요에 흔한 사랑 노래입니다. 

저에게 안동역은 그 노래만큼 낭만적은 아니었습니다. 고향에 올 때는 마냥 좋지만 서울로 돌아갈 때는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거리에 번잡한 교통, 낯선 골목길에 들어서면 한참을 헤매야 하는 미로, 급우들에게 촌놈 소리를 들어야 하는 학교, 공부 잘하고 세련된 서울 아이들에 대한 열등감 등등 돌아가는 길은 부담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짐을 들고 같이 기차에 오른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되어 종내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기적이 울리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할 즈음에야 뛰어내리곤 하셨지요. 간식과 음식물을 싸주시던 어머니 생각으로 한참 눈시울이 뜨겁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안동으로 가는 기차는 청량리를 출발해서 강원도 원주와 충북 제천을 거칩니다. 경북으로 들어와 안동을 지나서는 대구로 해서 종착역인 부산까지 갑니다. 당시는 급행열차가 많지 않아 주로 완행을 타고 다녔습니다. 안동까지 가는 데 작은 시골역들까지 다 서면 그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서는 곳마다 새로 타는 승객들과 장사꾼들이 올라오면서 거친 억양의 사투리로 차 안이 시끌벅적합니다. 청량리에서 밤에 타면 안동역에는 다음 날 아침에 내립니다. 3등 완행열차에서 밤을 새우는 건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좌석을 차지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입석에 걸리면 정말 힘들게 견뎌내야 합니다.

요즘은 고속도로망이 잘돼 있어서 서울에서 안동까지 3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길 사정이 좋으면 2시간 반 만에도 갈 수 있죠. 자동차로 가면 기차 여행 시의 구수한 인정 같은 건 겪어볼 수 없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3명씩 마주보는 기차 칸에서 앞 사람으로부터 소주 한 잔에 오징어 안주까지 얻어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시절 소주로는 강릉산 경월소주가 제일 많이 기억나고 이따금 보해소주도 마셔본 기억이 있습니다. 맥주는 비싸서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철도망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안동에도 드디어 KTX가 들어와 지난 1월 5일 개통되었습니다. 지금은 2시간 남짓 소요되는데 일부 구간의 터널 작업이 완료되면 1시간 15분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해야겠죠. KTX 운행에 맞춰 안동역은 새 역사로 이전하였고 구 역사는 선로도 없이 텅 비어 있게 됩니다. 진성의 노래 속 안동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오랫동안 구 역사 앞에 서 있는 '안동역에서'라는 그의 노래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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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사 이전에 따라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에는 기차가 안동호를 끼고 들어가다가 오른편으로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이 시야에 들어오면 스피드를 줄입니다. 곧 안동 시내로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일제 때인 1942년 그들은 중앙선 선로를 깔면서 석주 선생이 미웠던지 종가 고택인 임청각 마당을 질러가도록 했습니다. 임청각은 석주 선생을 비롯하여 3대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입니다. 이번 안동역사 이전으로 지난 16일 그 철길을 뜯어냈으니 지하의 석주 선생도 마음을 놓을 듯합니다. 

대부분 안동, 하면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그리고 안동 간고등어나 헛제삿밥 또 근래 유명해진 안동찜닭 정도를 떠올릴 겁니다. 그렇지만 국보 16호가 안동에 있는 것을 아는 분은 매우 드물 것 같습니다. 국보 16호인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임청각에 근접해 있는데 얼마 전까지 기차 선로에 밀접해 있던 탓으로 심한 훼손을 겪어왔습니다. 이번 안동역사 이전에 따른 구 선로 철거로 국보 16호와 함께 그 지역이 제 모습을 회복하면 안동이 더 멋진 곳으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제 안동을 드나드는 승객은 칠층전탑이나 안동호를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안동호 상류의 경관과 안동호를 가로지르는 월영교(月影橋)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수시로 달리는 기차의 소음을 듣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밤의 월영교는 이미 전국적인 구경거리가 돼 있죠. 월영교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다리에 지붕이 씌워져 있다는 것으로서 이런 스타일의 다리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지붕 있는 다리(covered bridge)'는 스위스 루체른(Luzern)에 있는데 다리에 지붕을 씌운 건 미관상의 이유와 함께 비를 맞지 않도록 하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Bridges of Madison County)'란 소설(영화가 더 유명)은 주인공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가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일곱 개의 지붕 있는 다리를 촬영하러 왔다가 그 지역의 어떤 여성과 로맨스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미국에서도 지붕 있는 다리는 이렇듯 특별한 모양입니다.

월영교를 설명하다 보니 잠시 옆길로 빠졌습니다. 기차는 현대의 우리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경성역으로 불리기도 했던 서울역은 말할 것도 없고 대전역이든 목포역이든 부산역이든 모든 기차역은 유서 있는 곳들이며 그만큼 특별한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정든 사람들 간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자 추억의 장소인 것이죠. 진성이 부른 노래 '안동역에서'가 없다면 안동역의 추억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추억은 노래 속에 살고 노래는 추억을 불러냅니다. 노래에 나오는 그 안동역이 없어지더라도 추억 속의 안동역은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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