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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1-01-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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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우림단상 210103] 북유럽 사회와 우리가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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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단상 210103] 북유럽 사회와 우리가 다른 점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정책, 민주주의 지수, 국민만족도 등의 국가별 순위에서 항상 상위 그룹에 이름을 올린다. 그 근본 이유가 뭘까 항상 궁금하였다. 이유를 물어보면 전문가들은 내전 등 치열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은 국가라서 그렇다든가,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든가 하는 등의 답변이 돌아온다. 일리 있는 얘기다. 국내 대학에 유학 왔다가 현재는 본국 핀란드에 돌아간 한 젊은 여성이 몇 년 전 텔레비전에 나와 하는 얘기, 한국의 진보 좌파는 핀란드에서는 우파에 속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어느 정도 의혹이 풀렸다.

북유럽 국가들이 진보적인 여러 정책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사회 모델들을 과감하게 선택․실행할 수 있는 것은, 개혁 시도를 무산시키는 공고한 ‘기득권 연합 세력’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와 조합이 개개인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 줄 것이라는 무한 신뢰도 뒷받침되었을 것이며, 우리의 사회 제도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민주적 주체 의식도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지독한 진통을 겪었다. 검찰 개혁 작업도 그러하고 부동산 문제도 그러하다. 신년 초에 들려 온 “의사 국시를 거부한 예비의사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찜찜하고 마뜩치 않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정부의 서툰 접근도 문제지만, ‘기득권 동맹’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려는 ‘기득권 동맹’도 문제다. 검찰 권력이 문제라면 아예 검찰청을 해체하고 ‘기소청’을 새로 만드는 것도, 얽히고설킨 ‘기득권 동맹’을 해체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 젊은 판사의 얘기가 법조계에 조용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록 재판이 진행되는 중이라 하더라도, 퇴근시간이 되면 법정에서 곧바로 귀가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밥집과 골프장에 가서도 자신이 사용한 비용을 개인적으로 지불하는 등 로비가 통하지 않고 전관예우가 통하지 않는 젊은 판사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는 변호사들의 불평을 들으면, 필자는 이들 젊은 판사들에게서 우리 사회 대개조의 싹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다.

최근의 일부 판결을 못마땅해 하는 정치권 인사들은, ‘사법 동맹’ 운운하면서 해당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기득권 동맹’은 제도 개혁을 통해 깨뜨려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사회 일각의 거친 압력에 맞서 법과 원칙에 따라 독립적 판단을 하는, 각성한 젊은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사법부는 행정부나 정치권에 기대할 수 없는 개혁적 사고와 역량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현 정권의 제도 개혁에 대해 ‘사법 동맹’이 건건이 딴지를 건다고 거칠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 말고 달리 어디에서 개혁 추진 주체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사기꾼 속성을 지닌 정치권에 기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이쪽저쪽 저울질 해가면서 눈치만 보는, 요즘에는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편싸움을 벌이는 언론에 기대할 수도 없고.

적폐청산(積弊淸算)의 모진 세파를 겪어낸 사법부가, 아직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대한민국 대개조의 싹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혁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 ‘기득권 동맹’도 결국은 사법부에 의해 혁파될 수밖에 없고, 혁파되어야 질서정연한 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

현 정권에 대해 아직도 40% 내외의 국민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진정으로 찬성하고 지지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주문’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난 세기 내내 굳어져 온 기득권 연대를 깨뜨려 달라는 주문 말이다. 이전 정권이나 현재의 집권 세력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능력을 잃은 집단들이다.

우리 사회가 거둔 지난 세기의 성과를 ‘기득권 동맹’이 독점, 우리 사회는 이제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의 공고한 성을 쌓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세습자본주의가 부(富)와 소득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주범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헬조선’이라는 용어 속에는 좌파도 우파도 동의하는 똑같은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마침 불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칠 호기(好氣)를 주었다. 대개조 작업은 날로 공고해지는 ‘기득권 동맹’ 깨뜨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날로 공고해지는 ‘기득권 동맹’ 깨뜨리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내전(內戰)과 같은 투쟁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얘기한 ‘파괴적 창조(creative destruction)’ 없이는 어떻게 새로운 질서가 태동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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