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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11-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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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청바지, 노동자의 옷이 패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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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노동자의 옷이 패션이 되다  * 정달호 회원 ‘자유칼럼’에 게재 2020.11.25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는 옷은 청바지일 것입니다. 청바지에는 멋과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죠. 저도 철따라 바꿔 입는 청바지가 대여섯 벌이나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흔 가까워서야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청바지 입은 사람들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사 입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해외 티브이 화면을 통해 본 레이건 대통령의 청바지 입은 모습이 노년인데도 매우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때를 계기로 저도 청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청바지를 처음 입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거친 질감과 딱 붙는 착용감, 거기서 나오는 탄탄함과 젊음의 느낌, 그리고 '나도 드디어 청바지 대열에 들었다'는 어떤 안도감(?)이었습니다.

 

노랫말에도 많이 나오는 청바지는 술을 곁들인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로도 인기가 있습니다. 누가 맨 처음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청춘은 바로 지금"이란 건배사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청바지 덕담이란 생각이 듭니다. 남녀 할 것 없이 몸은 노년을 향해 가도 마음은 청춘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건 인간의 보편적 심리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소위 '신중년'의 어르신들까지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러내어 말은 안 해도 청바지를 입음으로써 젊은층 못지않게 청춘을 누리고 싶은 심정이겠지요.

 

​청바지의 영어 이름인 블루진(blue jeans)이란 말의 유래는 이렇다고 합니다. 1795년 이태리 제노아(Genoa, Genes)의 상인 장 가브리엘이란 사람이 오래전 제노아 해군이 입었고 당시 북부 이태리에서 노동복으로도 유행하던 청색의 데님(denim) 바지를 나폴레옹 군대(Massena 군)에 공급하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그 옷을 제노아의 블루(bleu de Genes, blue of Genoa)라고 불렀는데 세월을 지나오면서 오늘날처럼 블루진(blue jeans)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블루진을 데님으로 부르기도 하죠. 오래전 프랑스 남부 님므(Nimes)에서 탄탄한 면직을 만들어 인도산 인디고 물감을 들여 청바지용 옷감을 생산한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데님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님므의'라는 뜻의 프랑스말 '드님므(De Nimes)'가 '데님( Denim)'으로 영어화한 것이죠.

 

​청바지는 미국으로 와서 산업적으로 더욱 발전하면서 점차 다양한 멋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르바이(Levi) 상표로 유명한 르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19세기 후반 금광, 탄광 개발 붐이 일 때 많은 노동자들이 미 북서부로 몰리는 기회를 잡아 탄광, 금광과 각종 공장의 노동자, 또 농부, 카우보이 등을 대상으로 청바지 작업복을 대량 공급하면서 비즈니스에 성공을 거둡니다. 그는 몇 가지 특허를 확보하는데 바지 뒷주머니 모서리 코너를 단단하게 조여주는 리벳(rivet)이라는 구리 액세서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리벳은 지금은 잘 쓰이지 않습니다.

 

​작업복이던 청바지는 1960년대에 와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수용이 되었으며 그 계기가 제임스 딘이 나오는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설이 그럴듯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1931~1955)이 청바지를 입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기성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영화의 주제와 청바지가 딱 어울렸던가 봅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주로 입던 청바지가 1970년대는 캐주얼 웨어로서 미국 안팎으로 일반적인 패션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청바지를 많이 입는 순위로는 물론 미국이 1위겠지만 한국도 상당히 앞 순위에 있을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사회로 치부되는 일본은 선진국 중 청바지를 가장 덜 입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패션이 된 청바지는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게 됩니다. 청바지 염색의 강도를 조절한 것은 이미 1935년경에 시작되었다지만 본격적으로 청바지의 물을 빼서 바랜 청색으로 만들어 파는 것은 근래에 들어와서죠. 공급자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응해 돌이나 모래에 문질러서 자연적으로 낡아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어떤 착용자들은 스스로 손질을 해서 더 낡아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빛깔의 변화와 함께 메이커들은 청바지 뒷주머니 부분에 멋스러운 실박음 문양을 내고 아래 부분에 패치를 붙이거나 무늬를 넣어 차별화를 하기도 하죠. 고급 디자이너 청바지는 1, 2천 불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니 과연 청바지 패션의 매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바지는 남녀 공히 입는 것이지만 패션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여성이 입는 청바지가 훨씬 멋져 보입니다. 여성의 청바지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이에 맞춰 색깔과 형태를 잘 골라서 각자의 매력을 최대한 내보일 수 있게끔 착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은 멀쩡한 청바지를 찢어서 입기도 하는데 그게 유행일진 몰라도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습니다. 살짝 찢어서 살이 조금 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너절하게 보일 정도로 갈기갈기 찢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찢은 청바지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이유 없는 반항' 이후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반항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멀쩡한 의복을 마구 찢어서 멋을 낸다는 것이 정도(正道)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세상을 풍미하는 의상은 청바지뿐일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거대 기업의 CEO부터 공장 근로자까지 같은 청바지를 입습니다. 남녀노소, 지위에 관련 없이 누구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청바지를 입게 되면서 의복으로 인한 이질감이나 불평등의 느낌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청바지는 평준화의 복장이자 평등의 의복인 셈입니다. 가히 의상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나올 때, 편리해서 노동복으로 주로 입던 청바지가 이제 일상의 의복이자 보편적인 패션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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