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가까이, 예정에 없던 뮤지컬 하나를 어렵사리 보게 되었습니다. 총 2백 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에서, 그것도 딱 이틀만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제목도 '외딴섬'이라 돼 있어 뮤지컬로서 별 재미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누구라 하면 알 만한 옛 직장 동료가 느닷없이 전화로 뮤지컬 표가 두 장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하기에 공연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저로서는 즉각 좋다고 했었지요. 이틀 중 둘째 날이었으니 마지막 공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공연장을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동숭동 일원의 오래된 교회의 강당 같은 곳인데 골목길을 꼬불꼬불 돌아야 닿을 수 있었습니다. 내려가는 좁은 통로 끝 지하 공간에 조성된 초라한 공연장이었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객석은 거의 차 있었고 관객은 대부분 교회 인사들과 뮤지컬 관련자들, 그들의 가족 또는 우리처럼 특별히 초청을 받아 온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주최 측의 초청이 있었던 데다 탈북인들이 직접 하는 행사라니 일종의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지요. 거기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서 제대로 된 뮤지컬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읽혀지기도 했습니다. 이 뮤지컬은 탈북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라파'라는 극단이 상당 기간 준비해서 제작한 것입니다. 라파는 언론인 독지가 한 분이 사재와 후원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영세 극단으로서 생긴 지 일 년이 채 안 됩니다.
다소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예정된 시간에 공연이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무대 구석구석에 5, 6명의 배우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장애인 딸, 아주머니 하나, 젊은 여자 하나, 장년 남자 하나, 그리고 중국인 청년 하나였는데 이들이 배역의 전부였습니다. 제목이 '외딴섬'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여섯 명이 각기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을 하거나, 중국 청년의 경우 감옥행을 각오하고 중국을 탈출했는데, 모두 한 곳에 도착하고 보니 가이드가 약속한 대로 남한 땅이 아니라, 다른 어떤 외딴 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자유를 찾아 나선 여정에서도 계속 외딴 섬에 와 있는 느낌을 가졌으며 종착지인 남한에 들어와서도 외로움을 느꼈다는 데서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는 거죠.
무대 위 지금 한데 모여 있는 곳은 여전히 북한 땅일 수도 있는 무인도입니다. 이들은 물도 구하기 어려운 이 외딴 섬에서 갈증과 허기와 두려움으로부터 생명의 안전과 자유를 찾아 다시 남한을 향해 함께 떠나야 하는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공포감이 지배하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지옥 같은 북한체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일말의 안도감에서 그들은 익살스런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일행 모두 연기 경험이 있어서인지 뮤지컬 배우로서 아무런 손색 없이 열연을 하였습니다.
김일성 부자를 희화화(戱畵化)하면서도 막상 비칭(卑稱)이나 막말을 쏟아낼 용기를 낼 사람은 당장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상 생활에서 체화된 주체사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가 어려웠던 것이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서서 김씨 일가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조롱을 시작하고는 모두 몇 마디씩 거들곤 합니다. 누가 엿들을까봐 습관적으로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그간 살아왔던 북한에서의 일들을 회고하면서 맘껏 풍자하고 비판하고 실소를 합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로서 겪었던 처참한 이야기를 할 때는 배우도 울먹였으며 보는 이들도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몰래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오열할 때는 관객들도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어쨌든 자유를 찾아갈 수 있다는 불타는 희망과 이로 인한 희열의 빛이 어려 있었습니다. 단순한 배우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얼마 전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겪은 실화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