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90709> 우리 사회, 이것만은 고치자(11): 일본의 수출 규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일본의 ‘수출 규제’ 정책은 이제 ‘한국 소외(Korea passing)’를 넘어, ‘한국 망가뜨리기’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정부방침을 발표하였다. 이번 시행령 강화 취지를 발표하면서 일본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라는 주장을 폈다. 이는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총 4차례에 걸쳐 이뤄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의 우리 해군 함정들에 대한 저공위협 비행 사건, 즉 ‘초계기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규제를 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일본 총리는 ‘수출 규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 ‘무역 관리의 문제’라고 강변, 이를 안보 문제와 연결시켜 (공산권에 대한 수출통제 다자조약으로서의) ‘바세나르 협정(Wassenaar Agreement)’까지 들먹이면서 반한(反韓) 여론전을 펴고 있다. 아베 총리가 모호한 언사로 ‘대북 관련설’까지 연결시키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한국 기업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일본에 대해 반도체 제조 등에 쓰는 3개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은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 거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 보복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등. 게 중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 정책은 일본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7월 21일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가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그러나 막연한 전망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당국자들도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사드(THAAD) 사태 당시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것 외에 크게 기대할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리 얘기하자면, 이 ‘위기’가 지나가면 근본 대책은 또 다시 흐지부지되고, 일본 기술이나 부품에 대한 의존도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탈(脫) 일본’을 부르짖으며 독자적 기술 개발에 나설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일본은 덤핑 등 교활한 수단까지 동원하여 저지하러 나설 것이며, 당장 눈앞의 이익에 홀린 한국의 기업들은 일본의 술책에 순순히 말려들어 대세에 순응하고 말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되풀이된 패턴이다.
정부에서 할 일은 대일 감정을 부추기거나 불매운동을 등을 통해 대일 보복조치를 했다고 떠들썩하게 떠벌이는데 그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 보복’이냐 아니냐를 따지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미국 등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정부로서 할 일’을 모두 했다는 ‘면피(免避)’용 제스처에 그쳐서는 더더욱 아니 될 것이다.
정부에서 할 일은 이번 기회에 한국이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첨단 소재 및 첨단 기술 개발을 육성・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일본이 두려워하는 한국의 대책도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기술 선진국들이 후발국 정부의 기업 직접 지원을 금지하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상황에서, 정부는 ‘제도’를 통해 기술 개발의 성과가 해당 기업에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어차피 돈을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정부운영자들이 해야 할 주된 일은, 신제도주의자(新制度主義者, new institutionalist)들이 주창하듯이,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행태를 바꾸는 일이다. 일본이 한국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대일 기술의존도’ 문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근본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일본의 기술을 넘지 않고서 한국은 결코 ‘일류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경제 철학과 관련된 문제로 좀 더 깊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나,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창하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시스템의 구축 문제도 차제에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정책자금을 투입하여 (중소)기업 등의 기술과 부품의 개발을 뒷받침하면, 그 과실을 대기업이 상업적으로 활용하되 수익의 일정 비율을 기술 및 부품의 개발을 주도한 (중소)기업에 할양해 주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