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며
필자는 지난 3월 13일자 본란에서 ‘위기의 민주주의’에 관해 쓴 바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더 이어 가고자 한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선거 제도다. 민주 국가든, 독재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간에 이같은 관점에서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원칙과 기법들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미시적(微視的)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기술적 접근에 그치고 만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놓치기 때문이다.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뒷받침하는 기본 메커니즘은 ‘선거’다. 그러나 ‘선거’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核心價値, core value)로서의 ‘자유’가 추구되어야 한다. ‘자유’의 가치가 육화(肉化)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껍질에 불과하다. 독재정권들도 ‘선거’를 치른다는 명분을 내세워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가장(假裝)한다. 인민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 people's democracy), 민주집중제(民主集中制, democratic centralism)와 같은 의사민주주의(pseudo-democracy) 체제들도 존재한다.
‘선거’를 치른다는 명분을 내세워 독재정권도 민주적 정치 체제를 가장(假裝)하고, 의사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주인 행세를 하는 상황에서, 이제 ‘민주주의’라는 단순한 개념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보다 정제(整齊)된 용어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러시아의 제2·4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 1952 ~ )도 명목상 러시아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원수다. 물론 다수의 부정선거 의혹과 정적들을 암살한 의혹, 집회 및 언론 탄압 행적 등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는 사실상 독재자로 간주되고 있다.
집권 기간이 20년이 넘는 독재자 아사드(Bashar al-Assad, 1965 ~ ) 시리아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그는 2000년 압도적인 지지율(유효표 중 97.2%)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2007년 5월 27일 또다시 97.6%의 득표율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는 2012년 개정된 헌법(임기 7년 중임)에 따라 2014년, 2021년에 연이어 재당선되어 2028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되었다.
아사드는 2007년 대선에 단독 출마해 97.6%의 득표로 재선됐는데, 투표장마다 정권의 친위대인 공화국 수비대원들이 깔려 있었고, 투표소 안에는 ‘찬성란에 동그라미를 치면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결코 민주적 정체로 분류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집권한 독재자들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민주적 정권임을 강변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는 조건을 충족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민주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이같은 연유에서 필자는 ‘자유’의 핵심 가치가 내면화되지 않은, 가장된 민주 정체와 구분하기 위하여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보다 정제(整齊)된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창한 바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비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와 대비된다. 비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된 정의(定義)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형식적인 민주적 제도와 절차 뒤에 비민주적인 관행"을 숨기는 통치 체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헝가리 태생의 법학자 사조 (András Sajó, 1949~)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국민투표적 의미에서 민주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빈 대학(Universität Wien)의 정치학자 바그란들(Ulrich Wagrandl)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실제로 민주주의의 뿌리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하나, 앞서 주장했듯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가 내면화되지 않은 정치체제는 민주적 정체가 아니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인도 태생의 자카리아(Fareed Rafiq Zakaria, 1964 ~ )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점점 더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카리아는 입헌적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중앙집권적 체제, 자유의 침식, 민족 경쟁, 갈등, 전쟁 등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선거가 조작되거나, 현직 집권자를 합법화하고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되는 정치 체제를 민주적 정치 체제로 간주하거나 분류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