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90909] ‘결과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를 구분하자!(12) > 청류담론

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청류담론

  • 사회적 발언대
  • 생활 발언대
  • 주요 외국언론의 칼럼
  • 많이본 칼럼

개인 컬럼
HOME > 청류담론 > 개인 컬럼
청류담론
  • 관리자
  • 19-09-11 09:05
  • 11,902

[사회적 발언대] [우림단상 190909] ‘결과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를 구분하자!(12)

본문

[우림단상 190909] 우리 사회, 이것만은 바꾸자(12) - ‘결과적 정의절차적 정의를 구분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32월의 취임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듭시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정의를 내세웠다. 그 뒤 우리나라의 식자(識者)들은 공평한 제재와 정의가 물과 강처럼 흐르게 하라(let judgement run down as waters,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아모스 5:21~27 )”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 ‘정의의 가치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14년 뒤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019년 여름 한국 사회는 한 장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큰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논란은 정의(正義) 개념을 명확히 밝혀 정의(定義)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사용하는데서 그 부분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의(正義, justice)와 공정(公正, fairness)의 가치어는 평등(平等, equality)서술적 구성요소(descriptive component)’의 핵심으로 담고 있다. 1987년의 개정 헌법에 등장한 경제의 민주화개념(119) 속에 들어 있는 민주라는 용어의 밑바탕에도 평등이 서술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평등의 극단은 공산주의이념과 연결된다는 차원에서, ‘평등보다는 자유의 가치를 위에 놓는 자유(자본주의) 진영에서는 형평(equity)’의 개념을 내세워 두 가치의 조화를 꾀한다. 철학자들은 평등의 개념을 절대적 평등상대적 평등또는 결과적 평등절차적 평등등으로 나누어 끝없는 논쟁을 전개하기도 한다.

정의의 개념도 결과적 정의절차적 정의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결과적 정의는 궁극적으로 절대 평등을 지향할 것이나, ‘자유의 가치를 우위에 놓는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평등형평의 개념으로 번안하여 자유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자유평등은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것을 선택해야 하는 배타적(exclusive)’ 관계에 있는 가치들이 아니라, 양자가 모두 인간 사회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다시 말하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가치들이다. 지난 수 천 년 동안의 인류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논의를 경제에 적용해 보면 결과적 정의절차적 정의의 관계를 더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다.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절대 평등을 지향하는 결과적 정의보다는, 그것을 지향하지만 반드시 고집하지는 않는 절차적 정의를 추구한다. ‘절차적 정의, 특히 미국 사회에서, ‘기회 균등(equal opportunity)’의 원칙으로 전환진화되었다. ‘기회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는 사회에서는 애써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그러한 사회가 바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믿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많은 사회적 갈등과 큰 변혁을 초래할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기보다 이들 가치재에 접근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이념적 선택을 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특히 교육기회의 평등을 중시한다. 미국의 수많은 정치인, 교육정책결정자, 학부모들은 좋은 교육이 곧 식권(食券, meal ticket)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기회 균등의 규범만으로는 심화된 양극화를 치유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회적 가치들의 보다 직접적인 재분배를 강조한다.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추상적 사회 정의는 물론 기회 균등의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덧없는 희망(mirage)’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특히 기득권 구조가 깊이 뿌리내린 계서제 사회에서 기회 균등의 이념은 기득권 집단에 대한 약자 집단의 도전을 호도(糊塗)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른 바 조국의 정의(正義)’ 논란은 절차적 정의기회 균등의 원칙이 곧바로 결과적 정의로 연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만 실정법으로 전환된, 아직 구멍(loophole)이 숭숭 뚫린 기회 균등의 원칙 즉 실정법만 어기지 않으면 그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신념화된 경직적 사고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회 균등의 규범과 절차적 정의는 궁극적 정의 즉 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은 결과적 정의에 기여하지 못하는 절차적 정의의 강조는 약자 집단의 도전을 억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조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기득권 집단이 최소한의 절차적 정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