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90606] 우리 사회, 이것만은 바꾸자(10) - 이념적 양분화의 거친 잣대 버리고, 정책분석 정교화하자!
문재인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야권의 이념적 비판이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자유 시장에서 시장기구가 이론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공공경제학을 평생 가르쳐 왔다는 경제학자가 최근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다고 자괴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문재인행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경제정책 기조도 그러하지만, 이념에 기댄 야권의 비판 또한 거칠기 짝이 없다.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양분법적 접근(dichotomous approach)은 70년 전 해방정국의 그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체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와 같이 이념적으로 접근할 경우 사회적 갈등의 해소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킬 뿐이다. 현실 세계는 단순한 흑백의 세계가 아니다. 정책은 사회 발전 단계에 맞추어 정교하게 개발・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책분석(policy analysis) 및 정책평가(policy evaluation)에서는 특정 정책이 적확하게 표적집단(target group)을 겨냥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태어난 지 5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정책학(policy studies)의 발전 수준은 아직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은 일단 설계대로 집행만 되면 그뿐, 사후적인 정책평가나 성과 측정이 시도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전적인 정책분석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된 정책 사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설사 부분적으로 성과평가가 시도된다 하더라도 포괄적으로 얼버무릴 뿐, 표적집단을 정확하게 식별해 그에 미치는 영향력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야권에서 집요하게 문제 삼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 최저임금제, 원전 정책 등도, 총체적 방향은 옳을 수 있지만 너무 거칠게, 양분법적으로 접근해 이슈가 커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교한 정책분석에 입각한 대응논리가 아쉬운 상황이다. 연금 정책만 해도 그렇다. 저소득계층을 겨냥해 설계한 정책의 혜택이, “당장 활용할 가처분 소득은 없으나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한” ‘부동산 부유층’에 돌아간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바, 이와 같이 표적집단을 비켜난 정책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소득을 늘려 성장 정책을 이끌어 가겠다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성공시킬 수 없다.
현실 속의 정책평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평가 결과에 따른 책임 문제 때문에 사후 평가를 기피하기도 한다. 학문 발전의 낮은 수준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극히 일부분의 정책 문제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게 한다. 더욱 나쁜 것은 적지 않은 정책분석가들이 공공사업의 정당화를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분석 과정에서 관련 변수들의 조작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비용-편익 분석 과정에서 변수를 이리 저리 바꾸는 조작을 일삼는다는 점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그것도 과학의 이름으로.
정책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고 지식인 용병(intellectual mercenary)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정책 전문가들의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어야 한다. 정책학자들의 전문가적 역할과 자세가 확립될 때, 행정가들은 포퓰리스트 성향의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 중립적 전문가를 자임할 수 있다. 조작이 일상화된 정책 분석 결과를 믿지 못할 상황에서는 무소불위의 정치권력 행사를 견제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