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90427] 우리 사회, 이것만은 바꾸자(9) - 촘촘한 매뉴얼 만들어, 인권 논란 잠재우고 공권력 바로 세우자!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모든 사회적 이슈를 ‘인권’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권 이슈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국가공권력과 인권이 서로 부딪치는 접점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권력을 무력화, 소극화하게 만든다.
국가공권력의 존재이유는 일탈적 행위를 일삼은 일부 구성원을 억제, 국민일반(public at large)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국가공권력이 소극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일반에게 돌아간다. 2019년 4월 17일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사망 5명, 부상 6명)은 ‘공권력 무력화’의 전형적 사례다. 우리 사회의 공권력은 2009년 1월 20일의 ‘용산 참사’ 사건, 2016년 11월 시위진압 도중 사망한 고(故) 백남기 옹 사건 등을 계기로 서서히 무너지고 소극화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인권과 국가공권력은 최소한 균형화되어야 한다. 인권이 효율적으로 확보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통해, 방만하게 확산되는 ‘인권’ 이슈의 범위를 좁히고,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기보다는 그 반대로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공권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권력 행사 매뉴얼을 촘촘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 영역에서는 물론 확립된 매뉴얼대로 공권력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 업무 처리를 위한 매뉴얼을 정교하고 다듬는 작업을 중단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늘날의 인권 이슈는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이후 경제권과 사회권 차원의 여러 담론들로 다기화(多岐化), 추상화되었다. 이와 같이 다기화, 추상화된 인권 이슈들은 신체의 자유와 같은 ‘정통적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도록 만들었다. 국제연합(UN)의 당초 이름이 ‘열강연합(Associated Powers)’이었다는 사실에서, 국제연합의 지원을 받는 ‘인권 운동’이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정통적 인권 문제’를 비껴가도록 영향 끼쳤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전 세기 식민지 국민이나 소수 민족에 대한 박해 수단으로 널리 자행되었던 살인, 고문 등 인권 침해는 21세기의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그것도 선진민주 국가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Dianne Goldman Berman Feinstein, 1933~)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은 2014년 12월 9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자행된 고문 실태보고서 요약본을 공개했다. 이 ‘CIA 고문 보고서(CIA Torture report)’에는 CIA가 구타는 물론이고 성고문, 모의 처형, 잠 안 재우기, 손을 머리 위로 묶어 매달기, 항문을 통한 음식물 투여(rectal feeding), 좁은 공간에 가두고 곤충 집어넣기와 같은 가혹 행위까지 행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인권’을 중시한다는 미국에서 약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 그렇게 많은 국제인권기구들이 ‘CIA 고문 보고서’ 사건을 제대로 문제 삼지 않은 것은 국제연합이 주도하고 있는 ‘인권운동’의 한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인권 이슈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에 있다. 유엔과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문제 삼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비록 전시(戰時)이긴 하나 남한의 보도연맹 사건과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여러 공안 사건에서도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의 시위진압 과정에서도 인권 시비가 끊임없이 일고 있다.
앞서 얘기하였듯이, 인권 침해로 연결되는 국가공권력의 남용은 억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민일반의 인권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공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 균형 잡기의 현실적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은 소극화, 무력화되는 공권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일탈자들에 의한 다수살상 사건의 빈발은 공권력 무력화 현상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국가공권력에 의한 참혹한 인권 침해를 경험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공권력의 남용 또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주기적으로 야기되는 인권 논란을 잠재우고 공권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권력의 행사 요건을 정교하게 규정한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긴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