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190305] 우리 사회, 이것만은 바꾸자(7) - 정권 바뀌어도 지속되는 ‘미래전략연구소’ 만들자!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 국가 예산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 완공되기도 전에 부서지게 생겼다. 4대강 사업이 그러하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재정 측면에서 볼 때 매몰비용이 얼마가 들었든 간에 당장 중단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나라 곳간은 거덜 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이다. 좀 심한 말로 하자면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 놓아 주겠다”고 선심 쓰는 ‘사기꾼’들인 것이다. 오늘날 합리적 국가 운영을 위해 ‘정치’를 효과적으로 제어・견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는 ‘행정’이 있다.
그러나 서양 사회에서 행정은, 지난 2세기동안, 민주화된 정치의 통제를 받도록 구조화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왕권으로 상징되는 ‘행정권’을 국왕으로부터 탈취하여 시민 대표로 구성된 정치체로서의 의회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민주화 초기, 폭압적 왕권으로 상징되는 ‘행정’을,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부문에 예속시키는 것은 당연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 제도가 확립된 오늘날 ‘행정에 대한 정치 통제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00년의 대중국 마늘 파동에서 보듯이, 지역구민의 표를 얻기 위해 600만 달러어치의 수입 마늘 때문에 5억 달러 가치의 휴대 전화를 날려버리는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바로 내가 취하게 하였다!”고 자랑하는, 무책임한 정치인 집단 아래 관료 집단을 언제까지 묶어 두어야 할 것인가? 그러고도 국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구석구석에 조작(造作)과 적폐(積弊)의 때가 낀 대의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 체제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행정에 대한 정치 통제’의 원칙은 ‘시민 통제’의 원칙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민에 의한 직접적 통제가 되었건 전문가 집단 또는 시민단체에 의한 간접적 통제가 되었건. 확실한 것은 오늘날 안정적으로 확립된 전문적 관료 체제를, 무책임하며 불안정한 정치 체제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원칙은 결코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제도화된 관료 이익을 추구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제국(bureaucratic empire)을 건설코자 하는, 통제되지 않는 관료 집단을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관료 집단은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시민단체 등의 견제를 받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식인 용병(intellectual mercenary)’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는 전문가 집단 및 기업주도시민단체(business initiated NGO: BINGO) 및 정부주도시민단체(government initiated NGO: INGO)와 같이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여론 조작을 일삼는 ‘가짜 시민단체’의 책임성과 진정성은 어떻게 확인・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 제기는 끝없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민주 사회에서 일체의 사회적 제도와 정치 과정은 궁극적으로 건전한 양식과 균형 감각을 지닌 시민에 의해 견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 주체가 국가기관이 되었건 민간조직이 되었건 간에, 이들 조직에 의한 인위적 여론 조작이 근절되어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에 의한 여론조작 사건이 불거졌으며, 현 정권에서는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 터졌다. 민주적 기본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이러한 행태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 국가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파에 구애되지 않는 중립적 관점에서 중장기적 국가발전 전략을 짜는 국가기관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미래전략연구소’는 기존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같은 기구를 확대・개편해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러나 책임감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민간전문가와 관료 집단의 혼성팀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뒤처리를 위해 열린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패전국 일본이 전승국 못지않은 국익을 챙기게 된 것은, 비록 총칼에 의한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외교전을 통해 국익을 챙기고자 한 외무성 관료들의 집요하고 꾸준한 연구회 활동 때문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정치적 동력을 잃고 수면 아래 잠재되긴 했으나, 개헌 이슈가 재점화될 경우 ‘미래전략연구소’ 설치는 국가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교・국방 연구회’, ‘정치발전 연구회’, ‘경제・사회 연구회’ 등 전문 연구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의 헌법 기관으로 제도화될 경우,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