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200115] ‘양극화’ 방지의 길은 있다. 단지 정권의 실행 의지가 부족할 뿐이다!
‘양극화 사회’, ‘격차 사회’에 대한 전 세계 지식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 사회에서조차 진보적 인사들은 물론 조지 소로스와 같은 첨병적 자본가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부흥회라 불리는 다보스포럼(Davos Forum)의 2012년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장 났다고 진단하면서, 세계경제 질서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고자 하였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그들이 문제 삼은 핵심적 문제점은 ‘자산 및 소득 양극화’현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정권들이 그동안 내세운 양극화 시정책은 규범적 차원의 이슈 제기에 머물렀을 뿐 구체적 교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행정적 차원에서 해석하자면 이러한 정권의 입장은 양극화를 시정할 진정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자산 및 소득 양극화’에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가능한 시정책은 두 가지 뿐이다. 첫 번째 조치는 ‘정치・경제・사회적 경쟁 조건’을 사전적으로 균등하게 하는 ‘기회 균등(equal opportunity)의 원칙’을 철저히 제도화하고 실질화하는 것이다. 물론 결과를 중시하는 식자들 가운데는 ‘기회 균등의 규범’만으로는 심화된,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를 치유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조세 제도를 통한 ‘결과지향적인’ ‘직접적 재분배 정책’을 강조한다. ‘기회 균등의 이념’은 기득권 집단에 대한 약자 집단의 도전을 호도(糊塗)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자산 및 소득 양극화 해소의 두 번째 조치는, 앞서 밝힌 바, ‘누진세(progressive tax systems)’와 같은 평등지향적인 직접적 조세 정책이다. 그러나 조세 정책의 변경에는 적지 않은 조세저항(tax resistance)이 따르게 마련이다. 많은 경우, 조세저항은 기업(corporations)들과 초갑부(superrich)들로부터 야기된다. 비록 이러한 조세저항은 이들에게 포획된(captured) 관료집단과 덩달아 춤추는 일부 보수적 중산층에 의해 확산되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를 시정하기 위한 진보 정권들의 교정책들이 초기부터 저항에 부딪쳐 무산된 것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어느 사회든 양극화를 교정할 시정책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특정 정권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저항에 맞서 양극화를 시정할 진정한 개혁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정권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의 명분을 내세워 필요한 개혁 조치를 흐지부지 해버리고 만다는 점이 문제의 관건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강조된 지행합일(知行合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뒤집어 말하면 아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하다.
미국 사회가 부러운 것은 ‘기회 균등’ 즉 ‘조건의 균등화’가 되었건, ‘평등지향적인 직접적 조세 정책’이 되었건, 일단 정책으로 채택되면 철저하게 집행한다는 점이다. ‘시장의 공정 질서’ 확립을 위해, 20세기 초 미국의 반독점법들(Anti-trust Acts)이 그러하였듯이, 질서를 어지럽힌 기업에 대해서는 도산할 정도의 가혹한 처벌들이 과해졌다. 한국의 시장질서가 포획(捕獲)된 관료집단의 저항적 명분들과 느슨한 사법체계를 통해 쉽게 흐트러지는 것과는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정치・사회적 게임의 룰’도 그러하다. 일부 기득권 집단들은, 입으로는 ‘공정 사회’를 외치면서도 제도적 공정 장치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활용’하거나 훼손하기 일쑤다.
격차사회 교정을 위한 누진세 장치들도 “해당자가 과소하여 실효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무산되기 일쑤다. 우리 사회에서는 40% 내외의 (최고)소득세 구간 신설 여부 두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논란이 벌여졌는가? ‘평등’보다는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미국 사회가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90%를 상회하는 최고 소득세 구간을 설치하고 80%에 가까운 최고 부동산 세율을 시행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내년도 미국 대선의 유력한 민주당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워렌(Elizabeth Warren,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은 최근 자산이 5천만 달러가 넘는 부유층에 대해 2%의 부유세를, 그리고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초부유층에 대해서는 6%의 부유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어느 누가 미국인들에게 ‘철학’이 부족하다고 조롱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