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210619] 세상이 바뀌고 있다
30대의 한 젊은이가 야당 당수가 되었다는 것은 상징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난 50여 년간 지탱해 온 소위 ‘87년 체제’가 붕괴되고, ‘86 세대’가 교체되는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실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불태워버린 인간 사회는 일체의 가식과 군살이 제거된 메마른 황무지 같다. 기존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일자리도 사라져 버렸다. 마치 흑사병 창궐 이후 노동집약적 봉건 체제가 붕괴되고 근대사회가 열렸듯이. 다른 한편에서는 일련의 정치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허상(虛像)을 보아버린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가 애써 쌓아 놓은 일체의 ‘확립된 제도(establishment)’와 ‘위선’을 배척하고 있다. 2020년의 4·15총선과 2021년의 4·7 재보궐 선거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기성 정치 제도와 정치인들이 죄다 불신을 받은 것이다.
정치 과정에 드러난 우려스러운 점은 무엇보다 실망한 젊은이들이 계층 상승의 희망을 포기하고 파괴적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아직 계층 상승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등 다른 나라 젊은이들만큼 파괴적이지는 않다. 최근 중국의 ‘탕핑족(躺平族)’ 관련 얘기가 흥미롭다. ‘탕핑족’은 “탕핑이 곧 정의(正義)”라고 부르짖으면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누워서 빈둥대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도 결혼도 취업도 포기한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는 용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정도가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다. 중국 당국에서는 ‘탕핑족(躺平族)’ 관련 기사의 “검색을 막고 있어” 아직 널리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평등을 추구한다고 겉으로 내세우기는 하나 밀로반 질라스(Milovan Đilas, 1911 – 1995) 전 유고슬라비아 부통령의 이른바 ‘새로운 계급(The New Class, 1957)’의 지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6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정의’의 문제가 새삼 거론되고 있다는 데서 “세상이 정말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세기 세계적 갈등의 광풍을 몰고 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21세기 들어 착종(錯綜)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른바 MZ세대들이 여러 사회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청년 문제를 제기하고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쓰는, 진정성 부족한 모습을 보노라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평소에 잘하지!
미시적 차원에서 시대적 변화 양상을 우리나라 정치권 상황을 통해 살펴보자. 내년에 예정된 가장 큰 정치 행사는 2022년 3월 9일 치러질 제20대 대통령선거다. 우물쭈물하다 세대 교체, 가치 전환의 선수를 야권에 빼앗긴 여권의 허둥대는 모습이 가관이다. 정의와 진보의 가치를 독점한 듯 우기면 국민들이 계속 지지해 줄 것으로 착각하면서 일체의 정치적 도전을 억압한 ‘86세대들은 걸핏하면 ‘세대 교체’를 하겠다고 민주화를 함께 한 운동권 선배들을 겁박,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기득권을 누려왔다.
정부·여당에서는 4·7 재보궐선거 참패 후, "관행과 오만에 눈 감지 않고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한 초선의원들의 개혁 요구를 ‘초선 5적’ 딱지를 붙여 수면 아래 질식시켜 버렸다. 특히 “검찰 개혁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 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 국민들께 피로와 염증을 느끼게 하였음에도 그것이 개혁적 태도라 오판하였다. ”고 한 이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비록 여권의 일부에서이긴 하나 “초선 5적이 촛불을 모독했다”고 비난하면서 ‘문자폭탄’을 퍼붓는가 하면 “배은망덕한 초선들은 낙선만이 갈 길”이라며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뒤늦게 개혁하겠다고 호들갑을 뜬 들, 이미 떠나버린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어떻든 세대 교체와 가치 전환의 새로운 기운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덮고 있다. 얕은 정치적 꼼수로 변혁의 물결을 돌리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마침 코로나-19로 일체의 기성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혁신의 물결이 새로운 변혁의 구체적 열매를 맺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