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200717]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2017.5.10.~2022.5.9.) 2년이 채 남아 있지 않은 2020년 7월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 대회를 가졌다. 2025년까지 160억 원(국비 114조 원, 지방비 25조2000억 원 및 민간사업비 20조7000억 원 포함)을 들여 일자리 190만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담겨 있다. 이 계획은 노무현 행정부가 임기 1년 반을 채 남겨두지 않은 2006년 8월 30일 발표한, 1,100조 원을 투입하여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4만 9천 달러를 달성하고 ‘삶의 질’을 세계 10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 2030’을 연상케 한다. 투자비의 정확한 조달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고, 사업 기간이 다음 정부까지 이어져 있어 계속 추진될 지 의구심이 드는 점도 닮았다고 할까. 임기 초 이러한 계획이 발표되고 추진되었다면 국민들은 더 진지하고 진정성 있게 받아들였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판 뉴딜’은 성장에 초점을 둔 정책이다.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이 강조된 새로운 성장 정책이 제시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정권 초에 강조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는 이미 추동력을 상실, 국민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메아리만 남은 상태다. 지난 12일 개최된 최저임금위원회도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8천590원으로 의결했다. 이러한 인상률은 2010년의 최저임금(2.8%) 이후 10년 만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른바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이 현실화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진보’ 정책이 퇴색된 상황에서 공정경제의 구호는 허공만 맴돌게 된 것이다.
4.13총선에서 집권여당에게 177석의 절대 다수 의석을 안겨준 국민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문재인 행정부의 ‘선의’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 행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큰 변곡점을 맞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정부의 신뢰도가 구체적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정권 주변 인사들이 강조하는 ‘정의와 공정성’ 문제를 국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게 된 계기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조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는 정부의 ‘선의’를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친정부측 인사들이 억울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부 취업준비생들이 제기한 ‘역차별’ 논란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와 공정성’ 문제를 보다 심층적 차원에서 따져보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역차별’ 논란은 다른 한편 ‘정의와 공정성’ 문제와 관련하여 진보진영 인사들의 도덕 기준을 문제 삼는 뚜렷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동안 특정 인사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 그를 둘러싼 소위 ‘진영’ 간의 편싸움에 많은 국민들은 불편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오늘날의 민주 사회에서 억지 논리를 펴면서 편싸움을 벌이는 정파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국민을 상대로 매일매일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부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내세우는 ‘정의(justice)와 공정성(fairness)’은, 논자들이 펴는 논리에 따라 언어분석을 해보면 동의어 반복에 불과하다. 즉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가치어에는 말하는 사람 즉 화자(話者)가 소망하는 바, 즉 이해관계(利害關係, interest)가 처방적 의미(prescriptive meaning)로 들어 있다. 가치어의 구성(component) 요소에서 가치판단과 관련된 의(義, righteousness)의 요소를 제거하게 되면, 사실 판단과 관련된 서술적 의미(descriptive meaning)만 남게 된다. 사람들은 이 서술적 구성요소를 가지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지게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취업준비생들이 제기한 ‘역차별’ 논란은,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와 공정성’ 문제를 깊이 따져보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흡한 담론 수준은 젊은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핵심(核心)을 놓치고 말았다. 사회구성원 간의 발가벗은 이해관계를, ‘정의’라는 거룩한 가치어가 덮고 있는 현실을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은 소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공정성의 가치와 근거가 빈약한 도덕성을 앞세우며 그 뒤에 숨은 정부의 솔직하지 못한 대응방식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정부운영의 어려움과 잘못을 더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2500년 전 공자(孔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