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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2-12-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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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국어문법책이 보고 싶다 * 정달호 회원이 2022.12.12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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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문법책이 보고 싶다

2022.12.12

국립국어원이 펴낸 '어문 규정집'이란 소책자가 나와 있어 저도 한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 등이 그 내용입니다. 한글맞춤법에는 문장부호가 별도로 첨부돼 있으며 표준어규정에는 표준어 모음집이 첨부돼 있습니다. 위 어문 규정들은 국어사전의 부록으로도 실려 있습니다.

제가 의아해하는 것은 어문 규정에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등은 있는데 문법에 관한 언급은 왜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맞춤법을 보면 조사, 의존명사, 보조용언 . . . 등등 문법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정작 문법 자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국어의 올바른 사용과 보존, 발전을 위해서는 국어문법이 매우 중요할 터인데 어문 규정에 문법이 빠져 있어 불완전해 보입니다.

십수 년 전 현직에서 은퇴한 후 어쩌다 칼럼을 자주 쓰게 되어, 보다 정확하게 잘 쓰고자 하는 생각에서 문법을 비롯하여 무엇이든 우리 말글의 뼈대가 되는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맞춤법을 들여다보니 문법은 아니었습니다. 사전에는 맞춤법을 '글자를 일정한 규칙에 맞도록 쓰는 법'으로 정의하고 있네요. 그 옆에 '철자법'이라고 또 씌어 있으니 맞춤법은 곧 철자법이란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문법은 어디에 있나, 하는 궁금증 때문에 알 만한 데에 수소문도 해보았는데 신통한 대답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 말에나 있는 문법, 즉 'grammar'는 안 보이고 없고 철자법(orthography)만 있는가 싶어서 종로 일대 서점들의 서가를 뒤져보았더니 국어학자들이 펴낸 국어문법론이 몇 권 있었고 따로 '중등국어문법'이라는 얇은 책자가 있긴 하였습니다. 다 수시로 참고할 수 있는 우리 말글의 지침서로 보기엔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데 이들이 문법책도 없이 한글을 배울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어 외국인을 위한 한글 교재를 살펴보았습니다.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웬만한 문법 규칙이 다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비교적 정확하고 때로는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대견하게 보아 왔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맞춤법 규정을 들춰보았더니 제 1장 총칙 제 1항에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제 2항에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우선 제 1항에서 말하는 어법은 또 무엇이며 그 어법은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요? 얼핏 드는 생각입니다만 '어법'은 관습적으로 확립된 말하기의 규칙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말을 하다가 어법이 틀렸다 싶으면 바루기도 합니다. 듣는 사람이 일러주어서 깨닫기도 합니다.

관습적으로 확립된 '어법'의 일부가 맞춤법으로 정착되었다면 이 맞춤법을 포괄하는 어법 전체로서 체계를 갖춘 '국어문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말글을 배우기도 쉽고 틀리지 않고 바르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고 문장을 수십 년 써 온 사람조차 우리글을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것은 첫째 맞춤법이 복잡하여 이를 꼼꼼히 익히려 하지 않는 데다 둘째 문법책이 없어 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등 시절에 영어 배울 때를 상기해보면 교과서와 함께 문법책이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의사 표현에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이나 유명인사들도 어법에 맞지 않게 말을 하기 일쑤입니다. 길거리 같은 데서 티브이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현상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초중등 시절에 우리말의 어법이나 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법은 말하기의 법칙이고 문법은 글쓰기의 법칙이니 사실 어법과 문법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해야겠지요.

​맞춤법을 문법의 일부로 볼 때 이 둘을 아우르는 문법 교과서가 별도로 있어야 하고 이 교과서를 중심으로 우리말의 어법과 우리글의 문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근년에 국어기본법이 공표되었지만 법만으로 국어 사용이 잘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말과 글은 초중등 때만 배우는 게 아니라 평생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 보면 평생 참고할 문법을 포함한 포괄적인 어문규정이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2013년에 중등국어문법 표준안이 나왔다는데 다른 어문규정처럼 공표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 한글전용을 둘러싼 국어학자들 간의  알력으로 인해 학자들이나 관계자 간 서로 의견의 합치를 보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또 국어교육을 둘러싸고 과거 한 지붕이었던 문교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로 나뉜 후유증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마다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우리 어문교육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수한 한글을 잘 쓰고 잘 지켜나가는 일이 문화민족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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