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요리 좋아하세요? (1)
얼마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 어류도감(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보리)이 새로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이 도감(圖監) 저자들의 바닷물고기 사랑에 탄복하였습니다. 우리 해역에서 서식하는 물고기가 1천여 종이나 된다는데 그중 주요 어종 반 이상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서 물고기 도감을 만든 것입니다. 총 8백여 쪽, 무게로는 6.2kg에 달하는 초대형 도감입니다. 15년간 작업하여 528종의 물고기 세밀화 그림과 그들의 생태 등 각 어족에 얽힌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세밀화를 그린 조광현 화가는 물속의 고기들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6백여 회의 스쿠버다이빙까지 하였다 하니 화가를 비롯한 편집자들의 물고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인들도 바닷고기에 대한 관심과 관찰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어보(魚譜)로 불리는 어류 관찰 기록으로는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유배지 흑산도에서 쓴 어보, 영화로도 나와 있음)만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에 앞서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보냈던 김려(1766~1822)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서유구(1764~1845)의 전어보도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셋을 우리나라 3대 어보로 치는데 그중 우해이어보는 물고기마다 연관된 시가 한 편씩 붙어 있어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하게 합니다. 물고기를 얼마나 좋아했기에 시까지 지어서 그 옆에 붙였을까요. 이분은 조선 선비로서 상당한 미식가이자 풍류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물고기는 육류와 함께 우리가 섭취하는 동물성 단백질의 원천입니다. 육류나 생선은 각기 다양하게 요리됨으로써 섭생을 넘어 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미식의 관점에서 제게는 육류보다는 생선 요리가 더 가까이 와 닿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육류 요리도 다양다기하겠지만 생선 요리는 재료가 되는 바닷고기 자체가 매우 많아서 육류보다 더 다양한 미식을 빚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유럽이나 아메리카, 여타 아시아 지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생선 요리가 훨씬 다채롭고 정치(精緻)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식당에서 주로 나오는 생선은 농어류, 가자미, 도미, 송어, 루제(rouget, 서대 또는 볼락의 일종), 아귀, 연어 등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앞서 든 물고기 도감에서도 한반도 전체 물고기 종류의 반 정도인 528종을 다룰 정도니 우리나라는 생선의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가난할 때는 전갱이, 청어, 고등어, 꽁치, 갈치, 가자미, 명태, 오징어 등이 주로 식탁에 올랐지만 훨씬 더 잘살게 된 지금은 대구, 농어, 민어, 도미, 능성어, 복어 등 고급 어류에 더해 전복, 가재, 새우, 게까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다양한 물고기가 나오는 것은 적당한 수온과 염도, 먹이 등 서식 환경이 좋아서일 것입니다.
우리의 바닷고기에 대한 식성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다양한 식성은 재료와 조리법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해왔을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해외 살이 경험을 가지고 서양인들의 물고기 조리법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해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다채롭되 우리만큼 다양하지는 않다는 것이 저의 관찰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생선 요리는 프랑스 요리와 이태리 요리인데 전자는 정교하게 만든 소스를 많이 써서 미묘한 맛을 내고 후자는 자연 향신료를 써서 신선한 맛을 내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이들 요리의 향미가 우수한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선은 후라이팬을 통과해야 요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본조리법이 단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냄비나 그릴, 또는 훈제로 조리하는 생선 요리도 적지 않겠지만요.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요? 요리를 직접 하지 않는 처지에서 감히 나설 영역이 아니지만 늘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니 겪어본 만큼 말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요리해 먹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지요. 생선으로 구이, 졸임, 탕/국, 찜, 튀김, 부침, 절임, 삭힘 등, 정말 여러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재료의 종류나 선도에 따라 어떻게 요리하는 게 제일 좋은지는 식당의 셰프나 가정의 주부가 결정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생선을 날로, 즉 생선회로 먹는 것은 비교적 특이한 식습관이지만 수십 년 전부터는 날 생선(raw fish)이 세계인의 미식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웬만큼 먹고사는 나라에서 생선회나 스시(壽司, 초밥)를 먹을 줄 모르면 촌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니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생선회를 활어로 먹고 일본은 숙성시켜서 먹는 것이 다르지만 습관과 기호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둘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우리 활어 식당에서는 다금바리, 돌돔, 대방어 등 고급 생선의 경우 내장까지 부위별로 잘 다듬어서 내놓기도 하지요. 우리의 경우 웬만한 생선은 다 회를 떠서 먹을 수 있지만 대구나 명태를 회로 먹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대신 이 둘은 탕 요리 외에도 대구포나 황태, 북어, 먹태처럼 말려서 먹는 방법이 다른 바닷고기보다 더 발달돼 있죠.
절임은 우리처럼 외국의 오래된 생선 요리법 중 하나이기도 한데 스칸디나비아의 청어 절임과 페루를 중심으로 하는 중남미의 세비체(seviche)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가자미식해나 홍어처럼 지역에 따라 생선에 양념을 가해 절이거나 삭혀서 먹습니다. 프랑스식이나 이태리식 생선 요리에도 올리브유를 가미한 훌륭한 절임 메뉴가 있는 것을 보고 이들도 생선을 꼭 익혀서 먹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이슬란드에서 우리의 삭힌 홍어처럼 식용 상어 삭힌 것을 독주인 슈납스를 반주(伴酒)로 해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발효를 바탕으로 하는 절임과 삭힘의 조리법은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젓갈은 삭힘의 또 다른 방식으로서 김치 등 절임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불가결한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생선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국이나 탕을 끓일 때는 못생기거나 무섭게 생긴 생선이 미끈하고 잘 생긴 생선보다 훨씬 더 좋은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복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쑤기미나 삼세기는 보기에는 흉측한데 끓여놓으면 최고의 맛입니다. 물메기탕이나 곰칫국(물곰탕)도 같은 범주에 든다고 하겠습니다. 지중해의 탕 요리인 부이야베스에는 무섭게 생긴 라스카스(rascasse, 쏨뱅이의 일종)라는 생선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죠.
정말 못생긴 생선으로는 아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귀를 보면 입맛이 싹 가실 정도로 징그럽지만 요리를 해놓으면 별미가 되지요. 복어처럼 아귀는 회로도 먹고 샤브샤브로도 먹고 찜이나 탕으로도 먹는데 이렇게 다양한 요리 방식이 있는 생선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프랑스 같은 데서는 아귀의 꼬리 부분 살코기만으로 최고급 생선요리를 만들기도 하니 못 생겼다고 결코 가벼이 볼 것은 아닌 거죠. 복어도 생김새와는 달리 고급요리로 대접받는데 숙취 후 해장용으로는 황태국과 함께 복어국을 최고로 치기도 합니다. 아귀에 비해 복어 코스요리는 비싸서 생선애호가들에게도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죠.
생선이나 어패류, 갑각류 중 이름이 '돌'로 시작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부류에서는 이들의 맛이 다른 것들보다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돌돔, 돌우럭, 돌문어, 돌멍게, 돌게 등이 그러한데 대부분 바다 밑이나 강바닥, 돌이 많은 곳에서 서식하는 것 같습니다. 생선류는 아니지만 돌미역, 돌김 등도 서식환경이 특별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텐데 다 맛이 우수합니다. 해삼도 돌해삼이 있을 법하지만 홍해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맛은 뛰어나지만 채취하는 데 노력이 더 들어서 값이 다른 것에 비해 비싼 것이 특징이죠.
생선 요리를 말하면서 생선의 간에 대해 한 말씀 보태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생선의 3대 간으로 불리는 것이 홍어간, 아귀간, 취어간인데 이 생선들의 간은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품목이죠. 생선의 간은 우리말로 '애'라고도 하죠. 홍어애 요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대중적 미식이고 아구의 간은 살짝 데쳐서 먹는 맛이 좋고 취어(쥐치)의 간은 양식(洋式)의 거위간(프와그라, foi gras)에 비견할 만큼 고급 요리로 칩니다. 이 세 어종의 간도 그렇지만 모든 생선탕에 있어 간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생선 애호가들의 상식일 것입니다.
요즘 너무 흔해서 탈이기도 한 먹방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닌 게 아니라 뛰어난 맛의 요리를 생각하면 일생 요리에 모든 열정을 바치는 셰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셰프를 주제로 하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요리의 맛과 모양은 결국 셰프의 손에 달린 것이니까요. 그들이 선택한 식재료로 그들의 손이 빚어내는 요리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먹지 않으면 삶 자체가 존속할 수 없는 것인데 먹어야 하는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게 셰프들의 일입니다. 단지 유명 셰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셰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셰프는 각 가정에서 요리를 맡아 하는 분들이니 이들에 대해서도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보 얘기가 셰프로까지 흘렀습니다. 주말엔 가까운 식당을 찾아 취향껏 생선 요리를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 어류도감(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보리)이 새로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이 도감(圖監) 저자들의 바닷물고기 사랑에 탄복하였습니다. 우리 해역에서 서식하는 물고기가 1천여 종이나 된다는데 그중 주요 어종 반 이상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서 물고기 도감을 만든 것입니다. 총 8백여 쪽, 무게로는 6.2kg에 달하는 초대형 도감입니다. 15년간 작업하여 528종의 물고기 세밀화 그림과 그들의 생태 등 각 어족에 얽힌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고 합니다. 세밀화를 그린 조광현 화가는 물속의 고기들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6백여 회의 스쿠버다이빙까지 하였다 하니 화가를 비롯한 편집자들의 물고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인들도 바닷고기에 대한 관심과 관찰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어보(魚譜)로 불리는 어류 관찰 기록으로는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유배지 흑산도에서 쓴 어보, 영화로도 나와 있음)만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에 앞서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보냈던 김려(1766~1822)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서유구(1764~1845)의 전어보도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셋을 우리나라 3대 어보로 치는데 그중 우해이어보는 물고기마다 연관된 시가 한 편씩 붙어 있어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하게 합니다. 물고기를 얼마나 좋아했기에 시까지 지어서 그 옆에 붙였을까요. 이분은 조선 선비로서 상당한 미식가이자 풍류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물고기는 육류와 함께 우리가 섭취하는 동물성 단백질의 원천입니다. 육류나 생선은 각기 다양하게 요리됨으로써 섭생을 넘어 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미식의 관점에서 제게는 육류보다는 생선 요리가 더 가까이 와 닿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육류 요리도 다양다기하겠지만 생선 요리는 재료가 되는 바닷고기 자체가 매우 많아서 육류보다 더 다양한 미식을 빚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유럽이나 아메리카, 여타 아시아 지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생선 요리가 훨씬 다채롭고 정치(精緻)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식당에서 주로 나오는 생선은 농어류, 가자미, 도미, 송어, 루제(rouget, 서대 또는 볼락의 일종), 아귀, 연어 등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앞서 든 물고기 도감에서도 한반도 전체 물고기 종류의 반 정도인 528종을 다룰 정도니 우리나라는 생선의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가난할 때는 전갱이, 청어, 고등어, 꽁치, 갈치, 가자미, 명태, 오징어 등이 주로 식탁에 올랐지만 훨씬 더 잘살게 된 지금은 대구, 농어, 민어, 도미, 능성어, 복어 등 고급 어류에 더해 전복, 가재, 새우, 게까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다양한 물고기가 나오는 것은 적당한 수온과 염도, 먹이 등 서식 환경이 좋아서일 것입니다.
우리의 바닷고기에 대한 식성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다양한 식성은 재료와 조리법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해왔을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해외 살이 경험을 가지고 서양인들의 물고기 조리법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해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다채롭되 우리만큼 다양하지는 않다는 것이 저의 관찰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생선 요리는 프랑스 요리와 이태리 요리인데 전자는 정교하게 만든 소스를 많이 써서 미묘한 맛을 내고 후자는 자연 향신료를 써서 신선한 맛을 내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이들 요리의 향미가 우수한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선은 후라이팬을 통과해야 요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본조리법이 단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냄비나 그릴, 또는 훈제로 조리하는 생선 요리도 적지 않겠지만요.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요? 요리를 직접 하지 않는 처지에서 감히 나설 영역이 아니지만 늘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니 겪어본 만큼 말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요리해 먹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지요. 생선으로 구이, 졸임, 탕/국, 찜, 튀김, 부침, 절임, 삭힘 등, 정말 여러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재료의 종류나 선도에 따라 어떻게 요리하는 게 제일 좋은지는 식당의 셰프나 가정의 주부가 결정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생선을 날로, 즉 생선회로 먹는 것은 비교적 특이한 식습관이지만 수십 년 전부터는 날 생선(raw fish)이 세계인의 미식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웬만큼 먹고사는 나라에서 생선회나 스시(壽司, 초밥)를 먹을 줄 모르면 촌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니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생선회를 활어로 먹고 일본은 숙성시켜서 먹는 것이 다르지만 습관과 기호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둘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우리 활어 식당에서는 다금바리, 돌돔, 대방어 등 고급 생선의 경우 내장까지 부위별로 잘 다듬어서 내놓기도 하지요. 우리의 경우 웬만한 생선은 다 회를 떠서 먹을 수 있지만 대구나 명태를 회로 먹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대신 이 둘은 탕 요리 외에도 대구포나 황태, 북어, 먹태처럼 말려서 먹는 방법이 다른 바닷고기보다 더 발달돼 있죠.
절임은 우리처럼 외국의 오래된 생선 요리법 중 하나이기도 한데 스칸디나비아의 청어 절임과 페루를 중심으로 하는 중남미의 세비체(seviche)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가자미식해나 홍어처럼 지역에 따라 생선에 양념을 가해 절이거나 삭혀서 먹습니다. 프랑스식이나 이태리식 생선 요리에도 올리브유를 가미한 훌륭한 절임 메뉴가 있는 것을 보고 이들도 생선을 꼭 익혀서 먹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이슬란드에서 우리의 삭힌 홍어처럼 식용 상어 삭힌 것을 독주인 슈납스를 반주(伴酒)로 해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발효를 바탕으로 하는 절임과 삭힘의 조리법은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젓갈은 삭힘의 또 다른 방식으로서 김치 등 절임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불가결한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생선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국이나 탕을 끓일 때는 못생기거나 무섭게 생긴 생선이 미끈하고 잘 생긴 생선보다 훨씬 더 좋은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복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쑤기미나 삼세기는 보기에는 흉측한데 끓여놓으면 최고의 맛입니다. 물메기탕이나 곰칫국(물곰탕)도 같은 범주에 든다고 하겠습니다. 지중해의 탕 요리인 부이야베스에는 무섭게 생긴 라스카스(rascasse, 쏨뱅이의 일종)라는 생선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죠.
정말 못생긴 생선으로는 아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귀를 보면 입맛이 싹 가실 정도로 징그럽지만 요리를 해놓으면 별미가 되지요. 복어처럼 아귀는 회로도 먹고 샤브샤브로도 먹고 찜이나 탕으로도 먹는데 이렇게 다양한 요리 방식이 있는 생선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프랑스 같은 데서는 아귀의 꼬리 부분 살코기만으로 최고급 생선요리를 만들기도 하니 못 생겼다고 결코 가벼이 볼 것은 아닌 거죠. 복어도 생김새와는 달리 고급요리로 대접받는데 숙취 후 해장용으로는 황태국과 함께 복어국을 최고로 치기도 합니다. 아귀에 비해 복어 코스요리는 비싸서 생선애호가들에게도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죠.
생선이나 어패류, 갑각류 중 이름이 '돌'로 시작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부류에서는 이들의 맛이 다른 것들보다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돌돔, 돌우럭, 돌문어, 돌멍게, 돌게 등이 그러한데 대부분 바다 밑이나 강바닥, 돌이 많은 곳에서 서식하는 것 같습니다. 생선류는 아니지만 돌미역, 돌김 등도 서식환경이 특별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텐데 다 맛이 우수합니다. 해삼도 돌해삼이 있을 법하지만 홍해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맛은 뛰어나지만 채취하는 데 노력이 더 들어서 값이 다른 것에 비해 비싼 것이 특징이죠.
생선 요리를 말하면서 생선의 간에 대해 한 말씀 보태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생선의 3대 간으로 불리는 것이 홍어간, 아귀간, 취어간인데 이 생선들의 간은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품목이죠. 생선의 간은 우리말로 '애'라고도 하죠. 홍어애 요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대중적 미식이고 아구의 간은 살짝 데쳐서 먹는 맛이 좋고 취어(쥐치)의 간은 양식(洋式)의 거위간(프와그라, foi gras)에 비견할 만큼 고급 요리로 칩니다. 이 세 어종의 간도 그렇지만 모든 생선탕에 있어 간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생선 애호가들의 상식일 것입니다.
요즘 너무 흔해서 탈이기도 한 먹방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닌 게 아니라 뛰어난 맛의 요리를 생각하면 일생 요리에 모든 열정을 바치는 셰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셰프를 주제로 하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요리의 맛과 모양은 결국 셰프의 손에 달린 것이니까요. 그들이 선택한 식재료로 그들의 손이 빚어내는 요리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먹지 않으면 삶 자체가 존속할 수 없는 것인데 먹어야 하는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게 셰프들의 일입니다. 단지 유명 셰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셰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셰프는 각 가정에서 요리를 맡아 하는 분들이니 이들에 대해서도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보 얘기가 셰프로까지 흘렀습니다. 주말엔 가까운 식당을 찾아 취향껏 생선 요리를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