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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2-02-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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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우림단상220225 자코메티,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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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단상220225 자코메티,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코로나]

 

30 년 전 로스앤젤레스 서북쪽에 있는 부촌 도시 패사디나의 미술관 입구에서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Man Pointing, 1947)’를 본 적이 있다. 스위스 태생으로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한 그의 복제품(複製品) 중 하날 것으로 당연히 생각되었다. 그러나 미국 내 예술대학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교(Art Center College of Design: ACCD)’가 패사디나에 소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코메티의 대표작인 그 청동 작품이 왜 패사디나 미술관 입구에 외롭게 서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두고 일부 비평자들은 고통과의 대면, 삶과의 정직한 만남이라고 묘사한다. 살아생전 그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하였다. “가장 아쉬운 건 사람이 딱 한 번 죽는다는 겁니다. 다시 태어나면 삶에 중요한 부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겠지요. 전 매일매일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제 조각들도 저처럼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겠죠라고.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은, 육탈(肉脫)한 조각품을 30년 만에 느닷없이 소환한 것은 핵심 키워드 본질(Wesen)’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글 제목을 자코메티,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로나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마지막 부분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What we cannot spea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고 일갈, 필자의 등에 식은 땀이 흐르게 하였다. 그 역시 본질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을 중시하여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명제(命題, proposition)나 시어(詩語)와 같은 예술적 언명, 윤리적 명제 등은 의미가 없는그냥 헛소리(unsinnig)일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예를 들면 역사는 절대정신이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과정이고, 절대정신이 살고 있는 집이다라고 한 헤겔의 형이상학적 언명은 그 진위(眞僞)를 검증할 수 없기에 의미 없는 헛소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논리실증주의 학풍에 큰 영향을 끼친 비트겐슈타인은 검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형이상학을 배격, 철학을 자코메티의 조각품과 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논리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천 년간 켜켜이 쌓여져 내려온 인류 사회의 흐름을 한순간에 뒤바꿔놓은 코로나19(Covid-19) 역병 또한 잔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껍데기로 가득 찬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비본질적 요소들을 떨쳐 내 버렸다는 점에서 자코메티, 비트겐슈타인과 상통한다.

많은 식자들은 Covid-19가 수천 년간 내려온 인간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인간의 생활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점검취사선택할 획기적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초래할 상당수의 새로운 변화들은 상황이 끝나면 이전의 전통적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변화들은, 특히 껍데기와 같은 비본질적 요소들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가 발전되면, 빌딩 사무실의 수요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이 1960년 발표한 껍데기는 가라에서도 본질문제를 들고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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