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지기재단의 아름다운 20년 2022.01.05
요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크게 주목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기적을 이룬 데 이어 민주화를 달성하고, 정보화 시대로 넘어와 초연결 디지털시대의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타고 이른바 K-컬처로 대변되는 한류의 바람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범람하는 외래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전통이 잊혀 가는가 싶다가 근래 들어 전통문화를 재창조하는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면서 더욱 풍요로운 K-컬처가 형성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K-컬처는 유입된 문화에 압도돼 잃어버릴 뻔했던 문화적 정통성을 새로이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K-컬처의 대표격인 K-팝은 외래적 요소도 강하지만 우리말, 우리 가락, 우리 춤에 녹아 있는 고유한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K-팝만큼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가꾸는 움직임이 일상의 의식주 문화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복, 한식, 한옥 등 우리 전통문화를 창의적으로 계승하려는 정책적 노력에 병행하여 근래에는 민간운동으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창립 스무 돌을 갓 넘긴 '아름지기재단'(이사장 신연균)의 전통문화 지킴이 운동이 이런 민간 차원의 노력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신문기사를 통해 아름지기재단의 20주년 맞이 특별기획전(2021. 10. 8~12. 5)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던 이 단체를 보다 더 잘 알아보기 위하여 통의동과 안국동에서 열리는 전시를 찾아 관람하였습니다.
‘아름지기’라는 이름은 자문위원인 김주영 작가가 지은 것으로서 전통의 아름다움을 한 아름 안아서 보듬듯이 지키고 가꾼다는 뜻입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름다운 전통을 그냥 지키는 것이 아니라 현대생활에 맞게 창의적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취지로 단체를 창립했다고 하며 그간 주로 의식주 각 분야의 좋은 전통을 찾아내어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1)문화유산 환경 개선, (2)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3)연구/교육과 전시 등 세 가지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고 합니다.
이번 20주년 맞이 특별기획전은 그간의 전시 품목 중 더 주목받을 만한 것들을 모은 것으로, 회고와 성찰을 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합니다. 영조가 입던 간결한 도포나 고구려인들의 추상적 상하의처럼 현대에 영감을 주는 것들과 함께 실용적으로 간소화된 제사상, 그리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간결미를 갖춘 한옥과 목가구 등 다양한 디자이너 품목들을 전시하였습니다. 짜임새 있는 전시를 통해 우리 문화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현대 한국인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생활 적용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름지기재단이 2001년 안국동의 작은 한옥 건물에 둥지를 틀어 활동을 시작하다가 2013년에 현재의 통의동 사옥(경복궁 서문 건너편)으로 확대 이전을 하였는데 이 집터가 추사 김정희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이며, 그전에는 왕으로 등극하기 전 영조(英祖)가 살던 터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전통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추사의 얼이 담겨 있을 듯한 그런 터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현 사옥의 입구에는 터를 파면서 오랜 세월 쌓인 2미터 남짓한 지층을 떠서 그대로 벽에 전시하고 있어 전통을 지킨다는 마음가짐이 입구에서부터 드러나는 듯하였습니다.
지난 20년간 재단 활동의 특징을 보면, 첫째로는 아름지기 운동은 순수 민간단체의 노력이란 점입니다. 관에서 주도하는 전통문화 보존 사업도 있고 개인적으로 벌여오는 전통 계승 노력도 있지만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이런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선진국형 운동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추세라고 봅니다. 일부 부유층 회원들이 기금을 형성하여 창립을 했으며 지금은 기업과 대중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퍼져 나갈 태세입니다. 민간 운동이지만 튼튼한 기반에다 이어령 선생과 유홍준 교수 같은 사계 권위자들도 관여함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그 활동이 매우 체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주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모여서 전통 양식의 좋은 점을 꾸준히 연구하면서 현대 생활에 맞도록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합니다. 전문가뿐 아니라 앞으로 전문가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도 참여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까지 지속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결과를 매년 주제별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하고 평가받는 과정을 거쳐 전통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가고 있으며 ‘온지음’이라는 의식주 관련 자체 연구소에 젊은 전문 연구원들이 포진하여 아름지기 운동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 민간단체가 전통문화 지킴이로서 벌써 20년간 활동을 해온 지속성입니다.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지속적인 운동이 되기 위해 아름지기재단은 처음부터 대중에게 다가가는 솔선수범의 자세로 운동을 추진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창립 초기에는 방치되어 더러워진 궁궐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문화재 관광명소를 중심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고 외국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안내판이나 간판의 현대화 같은 구체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사업을 벌여온 것입니다. 지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을의 모임 장소인 느티나무 정자 정비 같은 데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특징을 더 든다면 국내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해외에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런던에서는 2011년(Baeja, the Beauty of Korea)과 2017년(Craft Narrative: Beauty in Everyday Living) 2차에 걸쳐 전시를 가졌습니다. 전자는 배자(앞여밈이 트여 있고 소매가 없거나 짧으며 저고리나 포(포)위에 덧입는 의상)의 다양한 멋을 내세워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현대적 패션으로 크게 환영을 받았으며, 후자는 런던공예주간 전시에 초대를 받아 참가한 것으로서 차와 찻잔, 안주와 술잔, 도시락 등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전통 식문화를 선보여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2017년 샌프란시스코 한복 전시(Couture Korea)에서는 궁중 도포와 민간 복식 등 전통 한복과 함께 현대화된 한복의 자연미 절제미 상징미 품격미 파격미를 각인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7년에 걸쳐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내 국가관 프로젝트(1930년대 시작)에 현지 교포들과의 협력 하에 참여하여 한국관을 건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성균관 명륜당을 모티브로, 국내 목재까지 실어 가서 한 작업 끝에 2015년 11월에 개관하여 현지 사회에 한국의 전통 건축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합니다. 관에서는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이 큰 예산을 들여 우리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맡아 잘 해오고 있지만 민간의 창의와 열정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아름지기재단이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보완함으로써 우리 문화가 해외에 더욱 깊이 있게 소개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기획전시는 지난 연말 부산(F1963 석천홀, 2022. 2. 13까지)에서도 새로이 개막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행사를 토대로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가꾸는 운동이 부산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갈수록 실감되는 요즈음입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는 아름지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 문화가 더욱 융성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F1963은 고려제강의 옛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대형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