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류담론
많이본 칼럼
[오늘의시선] 경찰의 존재 이유
관련이슈오늘의 시선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1-11-23 23:11:35 수정 : 2021-11-23 23:11: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잇단 무책임·무능한 행태… 내부 자성 시급 국민생명·인권 보호 기본 책무 잊지 말아야
경찰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가. 지난 15일과 19일 발생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과 데이트폭력 피살 사건은 경찰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묻게 한다. 범인이 흉기 난동을 부리는 범행 현장에서 도망친 경찰관과 스마트워치의 기계적 결함을 출동 지연 사유로 든 경찰의 궁색한 변명도 그러하거니와 당해 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실효성 없는 과거의 재발방지책을 재탕삼탕 되뇌고는 할 일을 다한 듯한 수뇌부의 안일한 인식과 대처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경찰인가?‘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는 경찰의 임무로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그리고 범죄피해자 보호’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과 데이트폭력 피살 사건 어디에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경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시민들은 이런 경찰을 어떻게 믿고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적지 않은 시민은 이러한 경찰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을 낼 필요가 있는가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관련 경찰의 강력한 처벌을 호소하는 피해 가족의 국민청원은 청원 시작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을 넘겼다. 여러 언론에서는 경찰청장의 즉각적인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비대해진 경찰 권한은 내부의 자성(自省)을 통해 바로 세워질 필요가 있다. 한 시민단체 간담회에서는 미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찰 조직에 지나치게 큰 권한을 주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경찰 조직을 수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국가경찰과 관할 지역의 생활안전 확보에 주안점을 두는 자치경찰로 분리하고자 하는 시점에서는 특히, 경찰의 기능과 임무를 확고하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러 기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선 현장에서는 두 기능을 두부모 자르듯이 깔끔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무능하고 무책임해진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는 공권력 무력화도 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사회적 문제 발생을 꺼리는 경찰 간부 가운데는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해 치안질서를 확립하기보다는 차라리 범죄인에게 두들겨 맞으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권력과 언론의 눈치만을 보는 보신적인 간부 가운데는 그러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범죄인을 피해 달아나는 경찰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줄 뿐 아니라 자신이 범죄 피해자라는 동류 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안이해진 경찰 분위기를 쇄신하고 공권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경찰 수뇌부 경질을 통해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공권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경찰 조직이 권력과 언론에 대해 주체적인 주장을 적극적으로 펴고 설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치안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길이기도 하다. 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진압하며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기본 책무라는 인식이 경찰학교 등 경찰공무원의 교육과정에서 철저하게 주입·내면화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선 경찰서의 직무 교육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돼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과정에서 범인을 제압할 수 있는 체력 훈련도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공권력이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선량한 시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일부 지방경찰이 흑인의 인권을 짓밟고 부패한 것으로 언론에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은 불을 보고도 ‘폴리스(police)!’를 부르짖을 만큼 경찰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다. 그 바탕에는 경찰이 헌신적으로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믿음이 놓여 있기 때문이리라. 민주 사회에서 경찰의 존재 이유는 어디까지나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이 전제돼야 인권 경찰이 주창될 수 있고, 국가공권력도 바로 설 수 있다.
이종수 한성대 명예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