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단상 230313> 위기의 민주주의
오늘날 수많은 민주주의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즉 대중영합주의(populism)의 확산, 선출된 권력이 집권 후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며,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사법부를 개편하는 등의 행태를 통해 민주적 정치 과정이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버드대학 정부학과 교수인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지블랏(Daniel Ziblatt)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201 8년도의 공동 저술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다양한 원인을 이같이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들 목소리는 한가롭기 짝이 없다. 그들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s: SNS)의 확산 등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달로 사회구성원들의 경각심이 무뎌진 가운데 민주적 원칙들이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자들의 이같은 현학적인 문제 제기는 급박한 현실에 눈감은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 치고 나치즘, 페론주의,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 OWS)는 시위 등 대중영합주의가 대두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던가?
한편 다른 일단의 민주주의 연구자들도 자유주의의 빈곤, 경제·정치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2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에서 출간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에서 저자들은 이같이 주장했다. 또 다른 일단의 학자들은 대리인(agent)인 정치가들이 주인(principal)인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게임의 룰을 자의적으로 변경할 때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된다고 지적한다. 여러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로 개념화한 데 비해, 정치학계에서는 대의정치체제가 지닌 ‘대표성’의 문제로 접근한다.
어떻든 오늘날의 상황은 세계적 열풍을 부른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GPT)가 학술적 연구 논문과 판결문까지 써주는 상황이 아닌가? 이러한 일련의 급격한 기술적 변화는 민주적 과정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경각심을 근본적으로 허물고 있다. 벌써 우리 사회에서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같이, ‘킹크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조작 사건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미국과 유럽연합(EU) 그리고 캐나다 정부는 최근 틱톡·위챗(WeChat) 등 중국 앱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외견상의 이유는 ‘안보’였다. 그러나 내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중국이 이들 앱을 활용해 민주 사회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상원 정보위원장 워너(Mark Warner)는 2023년 3월 7일 정보통신기술 위협 제한법(RESTRICT)을 발의하면서, “이 법안은 상무부가 ‘국가 안보’에 과도한 위험을 초래하는 정보통신 및 기술 거래를 검토, 예방 및 완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해 해외 적대 세력의 기술로 인한 지속적인 위협에 포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틱톡은 중국 공산당의 감시를 가능하게 하고, 미국에서 악의적인 영향력 캠페인을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여론 조작을 통해 민주사회의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필자는 ‘안보’를 빌미로 한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보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중국이 2021년 총선에서 여당 승리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 후보들을 지원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인들도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과 2022년 3월 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중국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이같은 논의들은 물론 중국,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2023년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14기 1차회의 세 번째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중국 성립 이후 첫 ‘3연임’ 국가주석으로 등극했다. 마오쩌둥(1893∼1976) 사후 전례가 없던 ‘장기집권 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2977명 가운데 2952명이 표결에 참여해 만장일치의 투표 결과를 얻었다. 반대와 기권 등 이탈표는 단 한 표도 없었다. 이러한 비민주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무너진다.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근본적으로 붕괴되는 상황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