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산 숲속에서 만난 근현대사
지난달 어느 단체를 따라 '망우역사문화공원'을 탐방하였습니다. 한 시간 남짓 소란한 도심을 빠져나가니 근교의 수려한 가을 경관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서울은 도심에서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아도 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아차산의 한 봉우리인 망우산도 그 능선 중의 하나로서 서울에서 가장 먼저 동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차산은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터이기도 해서 지금도 산등성이에 보루와 성곽의 잔해가 남아 있습니다.
오랫동안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리던 이곳은 유족이나 연고자 외에는 그리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던 곳입니다. 시내 묘지 공간 부족으로 일제가 1933년 망우산에 새로 공동묘지를 조성한 건데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유명 무명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묻히게 되었으며 6·25전쟁 때 시내에 산재하던 수많은 주검들도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근 40년간 조성된 묘가 수만 기에 이르렀다가 이후 이장 등으로 계속 줄어서 지금은 7천여 기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개칭되었다가 올해 4월부터는 연구·홍보·교육 시설인 '중랑망우공간'의 설립과 함께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국가가 현충원 못지않게 이곳이 근현대사의 선구자들이 묻혀 있는 중요한 장소임을 인식하고 이에 걸맞게 위상을 높여온 것입니다. 2개 코스의 사색의 길이 나 있어 인문학 산책길로도 훌륭한 곳입니다.
망우(忘憂)의 유래는 태조 이성계에서 비롯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건원릉 터를 자신과 왕가의 능지로 정하고 나서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근의 고개에 올라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고 말한 데서 이곳을 망우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에 올라 둘러보니 당시 이성계가 경탄하고 만족했을 만한 길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선조 서거정이 말년을 보낸 사가정(四佳亭, 매화·대나무·연꽃·해당화) 터와 백사 이항복의 동강정사(東岡精舍) 터도 이 지역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높이 260미터 채 안되는 작은 산이지만 산세가 비교적 가팔라서 좁게 낸 길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안내자(정종배 시인, 전 역사교사)의 설명을 듣고 연도에 있는 몇몇 분의 묘소에만 내려서 직접 둘러보았습니다. 연도에서 멀지 않은 유관순의 합장묘지가 먼저 눈길을 끌었습니다. 1936년 이태원공동묘지 무연고 묘를 모두 이장해 와 합장묘를 조성하였는데 유관순도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어 합장묘 표지석 외에 유관순의 기념비가 따로 세워져 있습니다.
근현대사의 인물로는 당초 150여 명이 안장돼 있었는데 애국지사 중 많은 분들이 현충원으로 이장되기도 하고 그중 안창호, 이육사 등 여러 분은 개별 추모공원이나 기념관으로 또는 각각의 연고지로 이장돼 나갔으며 현재는 100여 기가 남아 있습니다. 문일평, 방정환, 서광조, 서동일, 오기만, 오세창, 오재영, 유상규, 한용운 등을 포함한 애국지사들과 박인환, 오긍선, 지석영, 장덕수, 조봉암 등 각계 선구자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고 유관 단체들에 의해 추모비가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중섭미술관이 있는 서귀포에서 올라오면서, 부부간·가족간 사랑을 주제로 삶의 애환과 갈망이 절절이 녹아 있는 명작들을 남기고 40세의 나이로 쓸쓸히 떠난 ‘국민화가’ 이중섭의 묘를 참배하고 오리라고 마음먹었었는데 가파른 언덕 아래에 있어 시간 관계상 찾아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파리나 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묘지에는 음악가, 시인, 화가들의 묘지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현충원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모시고 수시로 참배하는 기회를 갖는 데 비해 불멸의 작품을 남김으로써 오래오래 기억될 예술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적어도 대중들이 드나들기 쉽도록 표지나 접근로가 더 잘 정비되면 좋겠습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예술인들은 박인환, 김상용, 계용묵, 최학송, 김이석, 김말봉, 강소천(이상 문인), 이중섭, 권진규, 이인성(이상 화가 및 조각가) 등이며 이외에도 이광래, 함세덕, 노필 등 연극·영화인도 있습니다. 김영랑과 김동명, 나운규 등은 이곳에 있다가 각각 연고지로 이장돼 갔는데 김영랑의 경우는 그 후손이 망우역사공원으로 재이전을 희망한다고 합니다.
탐방 끝 무렵에 죽산 조봉암(1899~1959)의 묘를 둘러보았는데 커다란 비석이 서 있지만 비문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하였지만 진보당 창당, 평화통일 주장 등으로 정권에 위협이 되어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되었다가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파란만장의 인물입니다. 조봉암의 백비(白碑)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증언하는 유물로 남아 있다고 안내서에 씌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묘지는 남향으로 누가 봐도 볕 잘 드는 길지로 보이며 부부 나란히 잠들어 있는데 커다란 한용운 비석의 위치 때문에 나중에 묻힌 부인의 묘가 왼쪽이 되는 이례적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장되어 묘지는 없지만 비석만 남아 있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의 묘지는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장될 때 비석도 따라갔는데 안타깝게도 40여 년간 그냥 창고에 머무르다가 2016년에 다시 망우역사문화공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인 초·중등 학생들이 야외수업이나 수학여행 등을 통해 이곳을 탐방하면서 민족의 선구자들이 어려운 시기 국가와 사회를 지키고 가꿔온 모습을 보고 배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일반인들도 많이 방문해서 그 길들을 다니며 수려한 풍광도 감상하면서 살아 있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주변의 아차산 봉우리들과 연계해서 서울 둘레길 2코스로 조성돼 있으므로 가벼운 등반과 인문학 산책을 겸할 수 있어 좋습니다. 시내버스가 입구 가까이 들어오고 있어 이동에도 편리하다고 하니 많은 방문을 권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