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대선 이후 미국, 무너지는 민주주의 입력 : 2024-10-20
갈등과 분열의 장 돼버린 대선
경제 불평등에 정치 반목 심화
민주주의도 시간에 따라 부식
승자독식의 권력독점 폐해 커
선거제도·정당구조 확 바꿔야
미국 대선이 코앞이다. 전국 지지율로는 카멀라 해리스가 도널드 트럼프보다 조금 앞선다. 하지만 주마다 선거인단 전체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승자독식 방식이기 때문에 러스트벨트와 선벨트 7개 경합주의 우열이 판도를 좌우하게 된다. 챗GPT도 예측 불허라고 답한다.
책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생전에 세계화가 미국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화 와중에서 외국인의 유입이 이민과 난민 형태로 늘어나면서 생산직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중하층 백인 노동자는 생계와 후생에서 불만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중하층을 중심으로 백인의 불만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편용한 바 있다. 중상층 백인의 표심이 흑인과 아시아인 부모를 둔 해리스보다 비행과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로 향할 수 있다.
미국은 앵글로색슨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법의 지배 아래 기독교적 헌신을 통한 공동선을 추구해왔다. 일종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다. 그러나 초기 유럽의 이민자들과 달리 후기 히스패닉·중동·아시아계 이민자는 그러한 문화를 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민집단이 주류사회의 용광로 안에서 서로 융합하기보다 충돌한다. 인종과 종교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와 규범이 부딪치고 있다. 시민종교는 무너지고 있다. 가톨릭은 난민과 낙태를 받아들이기 싫어 트럼프로 기운다. 이슬람은 조 바이든 정부의 친이스라엘 중동 정책에 반발해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한다. 히스패닉 남성은 불법 이민자를 경계해 해리스에 대한 선호가 낮아지고 있다. 대선이 갈등과 분열의 장이 되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후진국을 경멸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던 '바나나공화국(Banana Republic)'으로 전락했다는 조소를 받는다. 미국의 백인 주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큰 정부에 대한 반발로 중하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이민자, 난민, 하위소득계층, 청년세대를 복지에 '기생하는 집단(freeloaders)'으로 본다. 난민 반대, 복지 축소, 세금 감면 등을 지지한다.
미국은 헌법정신,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붕괴와 함께 책임지는 정부와 개방적인 시민을 보기 어려운 2등 국가가 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특징지어진 미국식 발전 모델은 흔들린다.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는 노동자보다 300배 이상 번다. 지난 반세기 동안 15배나 늘어났다. 상위 10%가 부의 70%를 소유하는 반면, 하위 50%는 고작 2.5%를 점유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를 양분하면서 미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심하게 갈라져 있다.
냉전체제 붕괴 후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최종적 정치체제가 될 것이라고 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 트럼프 이래 미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다고 고백한다. 미국은 최고의 정부가 아니라 저질 정치인에 의해 움직이는 '최악의 정부', 즉 극악정치(kakistocracy)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대선 때마다 유력 기업과 가문이 정치헌금을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돈과 권력의 유착이 정치 과정을 부패시킨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체제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식한다. 미국의 단순 다수결 민주주의는 대통령제 아래 양당정치를 극심한 권력 대결로 몰아가는 한계를 보인다. 우리의 경우 공동체의 이상은 약해지고 대립과 반목이 심각하다. 팬덤정치 아래 진영 대립이 '두 국민'을 가져오는 상황이다. 승자 독식에 따른 권력 독점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연합정치를 위해 선거 제도와 정당 구조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