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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3-07-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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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다부동에서 백선엽 장군을 생각하다 * 정달호 회원이 2023년 07월 12일 '자유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문

다부동에서 백선엽 장군을 생각하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일대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최대 최고의 격전지였습니다. 고지가 많은 산악지역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아군과 공산 적군 사이에 고지 탈환을 위한 혈투가 있었습니다. 다부동 전장(戰場)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공산군의 남하를 막는 최후의 보루로서 총 240킬로미터 낙동강 방위선의 핵심 전선(戰線)이었습니다. 올해 3주기를 맞은 고 백선엽(白善燁, 1920~2020) 장군이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 장군이 지휘하는 미 8군과 연합작전을 펴 공산군의 대구·부산 진입을 막아낸 곳입니다. 195084일 새벽에 시작하여 4주 가까이 계속된 다부동 전투에서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공산군에 의한 더 이상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번 시간 덕분에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75일 다부동에서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과 함께 백 장군 3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6.25 때 만 한 살의 아기로서 안동에서 다부동 인근 영천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피란을 갔었기에 그 참혹한 전쟁의 어떤 장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올해 6.25 전쟁 73주년을 맞은 시점에 이르러서야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구한 다부동 승전의 현장을 찾아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의 운명을 지켜낸 그 격전지가 줄곧 궁금하였습니다. 마침 백 장군 동상 제막 등 큰 행사가 있다기에 모처럼 서울에 올라간 김에 마음을 내서 다부동을 찾았던 것입니다.

 

백선엽 장군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경력을 지녔던 분이지만 군을 떠나서도 여러 공직을 맡아 나라에 봉사해오셨습니다. 주 자유중국(대만)대사를 역임하는 등 외교관으로도 활동하셨으며 서거하시기 전까지 한국외교협회의 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번 다부동 행사 참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뿐만 아니라 외교협회 회원으로서도 꼭 한번 실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외교협회(회장 신봉길)에 대한 초청이었던 만큼 외교협회 회장을 필두로, 저를 포함한 전직 대사 몇 명이 방문단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여러모로 뜻깊은 행사였고 뜻깊은 행사 참가였습니다.

 

이번 행사와 관련하여 시종일관 저의 마음을 붙든 것은 다부동이라는 역사적인 장소와 백선엽이라는 인간이었습니다. 다부동의 역사적 의미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막상 현장에서의 느낌은 새삼스러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둘러본 주변 산세에서 숙연함을 느꼈으며, 저 산하에서 싸우다 떠나신 호국영령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겪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산화한 일만 여 명의 장병들뿐만 아니라 열악한 보급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남부여대(男負女戴)식 지원에 나선 이른바 민간인 '지게부대' 선열들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런 민초들의 자발적인 희생이 없었더라면 과연 다부동 전투가 승리에 이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백 장군의 장녀이신 백남희(白南姬, 1949~) 여사가 자기 돈 일억 원 이상을 들여 지게부대 추모시설을 만든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었습니다.

 

동상 제막 전 기념식에서 백남희 여사는 또 한 번 참석자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하였습니다. 백 장군께서 떠나시기 9개월 전에 쓰신 편지를 읽어줄 때였는데 한 줄 한 줄에 나라 사랑과 부하 사랑이 절절한 편지였습니다.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의 정신으로 전투에 임했다는 말씀에 이어 지금 계신 대전현충원을 나와 다부동에 잠든 부하들 사이에 묻히고 싶다면서 칠곡 군수에게 이곳으로의 이장(移葬)을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부동 전투 중 "내가 뒤로 물러나면 나를 쏴라!"고 외치면서 앞으로 진격을 명령하시던 백 장군님입니다. 이순신 장군 이후에 이런 훌륭한 장군이 또 있었는지, 저의 과문함으로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임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부동 전적지라는 특별한 역사적 장소에서, 백 장군님이 자신의 따님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호국의 영웅 백선엽은 어떻게 죽음을 각오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첫째 위기에 빠진 나라와 동포 사랑, 둘째 절체절명의 순간에 군인으로서 맡은 소임의 완수, 셋째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를 지켜낸다는 소명 의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삶이요 생애였습니다. 저는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백선엽 장군은 우리 시대의 이순신 장군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분이 사즉생·생즉사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뜻을 새기면서 평생 진정한 군인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이라 봅니다.

 

백 장군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 또한 이순신 장군의 그것과 겹칩니다. 친일 낙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모함에 빠진 것이나 나중에 이런 배은망덕의 무례와 모욕으로부터 벗어나 호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것 등에서 두 영웅의 공통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문 연구가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국의 영웅' 이순신과 '호국의 영웅' 백선엽 간 더 많은 유사점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충무공은 노량해전 때 관음포에서 전사하셨지만 기나긴 전쟁 기간 중 써온 난중일기를 후대에 남겼습니다. 다만 전사하신 바람에 그 전쟁의 징비록은 당신 대신 서애 유성룡 선생께서 쓰시게 된 것으로 봅니다. 백 장군은 숙명적인 전승을 거두고 나서도 우리 국군의 기틀을 잡는 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 6.25전쟁의 징비록까지 쓰신 셈이니 두 분 다 문무를 겸한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다부동 방문에서 유감으로 남는 것은 제막식·추모식 행사 관계로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일반에 개방되지 않음으로써 거기까지 찾아간 사람들이 6.25 당시 낙동강 전선의 전투상황을 되살펴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휴전 70주년이 되는 오는 727일에 백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고지에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의 동상도 세울 계획이라 하니 그때 또 틈을 내서 다부동에 다시 간다면 이번에 이루지 못한 전적지 관찰과 '시간여행'을 통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또 하나의 유감을 굳이 밝힌다면, 축사까지 하러 나올 만큼 알려진 소위 VIP 중 한 분이 백 장군의 전승을 기리면서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외적과의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분은 역사 지식이 비교적 짧은 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대까지 거슬러가지 않고 16세기 말 임진왜란의 예만 들더라도 우리가 왜군의 침략에 맞서 선방함으로써 적을 이긴 전쟁으로 보는 게 정설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전공(戰功)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어찌 이런 미욱한 언설을 내뱉었겠습니까.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백선엽 장군의 동상이 들어선 언덕배기는 장소가 협소하여 행사 참가자들 모두가 제막 장면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소수의 주요 인사들만 직접 제막 행위에 동참하거나 바로 가까이에서 이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외교협회의 일원으로 갔기 때문에 멀리서 사진이라도 찍는 영광을 가졌지만 그만만 해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백 장군의 동상은 서 계신 언덕에서 사방을 관찰할 수 있도록 360도 회전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만간 트루먼, 맥아더 동상도 들어설 뿐 아니라 바라건대 이승만 대통령 동상까지 거기에 세운다면 이곳은 세계사의 한 챕터로서 한국전쟁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여러 성지처럼 6.25 성지가 될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현재의 열악한 대중교통 접근로도 대폭 개선하여 학생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 누구라도 이 성지를 방문하기 쉽도록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6.25전쟁은 결코 잊힌 적도 없고 잊혀서도 안 되는 전쟁입니다. 사실 잊고 안 잊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Unfinished War)입니다. 결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아닙니다. 6.25 전쟁사 부분이 육군사관학교의 전사 커리큘럼에서 빠졌다는 한때의 실망스런 뉴스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6.25를 잊어버려야 할 사건으로 치부하기 위해 두 손 들고 나서던 일부 철없는 좌파세력의 망동이 요즘 바로잡히고 있어 적이 마음이 놓입니다. 우리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그분들 못지않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온전히 물려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자유와 민주, 인권, 인류애 등 보편적 가치를 나날이 드높여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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