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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3-05-1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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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그라운드 지로' 쌍둥이 타워의 비극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에 05.10.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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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지로' 쌍둥이 타워의 비극 *정달호 회원이 자유칼럼에 05.10. 기고한 글입니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orld Trade Center, WTC)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 거대한 '쌍둥이 타워(Twin Towers)'가 테러 공격으로 파괴되는 장면은 무수히 보아왔지만 그 건물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역사 채널(History Channel) 다큐를 통해 이 건물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를 더 실감 나게 접할 수 있었으며 그때의 사건도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납치된 두 비행기가 1분이 채 안 되는 시차로 두 쌍둥이 건물 각각에 충돌함으로써 상층부가 파괴되면서 비행기에 실린 대량의 연료가 함께 폭발하였습니다. 엄청난 화염으로 인해 철제 튜브 프레임들(framed tubes)이 녹아내림으로써 건물의 총체적인 붕괴를 가져온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와 살상이자 문명에 대한 거대하고 야만적인 도전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수없이 봐도 싫증이 나기보다는 볼 때마다 깊은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불시에 일어난 파괴의 규모와 희생자의 수로는 여느 전쟁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전쟁은 발발 요인인 사건들이 축적되다가 어느 시점에 터지는 것이지만 9·11과 같은 테러 공격은 사전에 면밀히 계획한 후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터진다는 것 외에 서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2,731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수많은 부상자가 났습니다. 두 건물이 완전히 파괴된 후, 집중적인 작업에도 불구하고 잔해 처리에 8개월이나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사고의 현장을 핵폭발의 원점에 빗대어 '그라운드 지로(Ground Zero)'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만 그 당시 장기간의 구조작업에서는 단순히 '잔해더미(The Pile)'로 통하였습니다.

 

여객기를 이용한 이런 복합적인 대규모 테러 공격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입니다. 이는 미국 본토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최초의 사례로서 미국의 안보 개념을 바꾸게 했습니다. 제가 직접 강의를 들은 적도 있는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8~2008) 교수의 문명충돌론이 그 당시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는데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자본주의 기독교국인 미국의 한복판에서 일으킨 이 테러 공격이야말로 그가 말한 문명충돌의 극적인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9·11 테러 발생 당시 유엔총회 참석차 맨하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매년 9월 두 번째 화요일에 열리는 총회에 우리 외교장관이던 한승수 씨가 총회의장을 맡아 개회식을 주재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맨하튼 동부 28가의 호텔에 투숙하면서 아침에 유엔본부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죠. 846분 첫 비행기가 쌍둥이 건물 북측 타워에 충돌하고 나서 바로 CNN에서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엔 가스 폭발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테러 공격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고부터는 실황이 계속 방영되어 보는 내내 공포와 분노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엔본부로 걸어가는 길에는 벌써 연기가 날려 오고 있었습니다. 비상대피 훈련 등 극도의 긴장감과 상실감 속에서 유엔총회는 하루 지나 개막되었지만 모든 업무가 긴박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러 상황에 따른 항공 통제로 인해 저는 사흘이나 뉴욕에 더 머물러야 했습니다. 머무르는 동안 허드슨 강을 넘어가 뉴저지쪽에서 페허가 된 맨하튼 남단을 바라보았습니다. 참담하고 허망하였습니다. 30년 가까이 뉴욕의 아이콘이었던 건물이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월드트레이드센터(WTC)를 검색하면 'World Trade Center(1973~2001)'가 뜨는데 사람도 아닌 건물에 생몰 연도가 표기된 것이 이 건물 말고 달리 또 있을까 싶군요. 지은 지 28년 만에 사라진 이 멋진 건물을 비운의 건물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9·11 이후 몇 번 뉴욕을 들를 때마다 그라운드 지로로 가서 당시의 사건을 되새기면서 쌍둥이 타워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하로 깊게 파진 건물의 터를 내려다보면서 테러로 인해 문명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만 명의 선남선녀가 일하고 살던 현대 문명의 한 상징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그것도 무고한 승객들이 탄 여객기를 납치하여 건물에 충돌하도록 한 기상천외의 악랄한 행위에 의해서 말입니다. 사건 당시에는 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건물 내에 있었다고 합니다. 한 생존자에 의하면 첫 번째 건물이 파괴되면서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로 공중으로 튕겨나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뭐라 외칠 수도 없이 모든 것이 찰나에 벌어진 것입니다.

 

WTC 건물은 9·11 이전에도 두어 차례 큰 수난을 당했습니다. 19752월에 큰 화재가 있었고 19932월에는 지하 주차장 폭발 사건이 있었습니다. 후자는 계획된 테러였는데 역시 이슬람 조직에 의한 것이니 8년 뒤에 일어난 9·11 테러 공격의 전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카에다가 이 건물을 목표로 테러를 수년 간 계획한 것은 그만큼 이 쌍둥이 타워가 미국의 중심인 뉴욕의 랜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서방 세계의 문명을 대변하는 건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건물은 건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서 세계화(globalization)와 이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경제력을 상징하였으며 건물이 건재할 동안 총 472편의 영화 촬영의 장소가 될 만큼 큰 인기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높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준공 직후 공실이 많아 고전하다가 19748월 두 타워 사이를 잇는 세기적인 줄타기 해프닝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가 되고 대중에게 친근감을 줌으로써 이후 공실률이 줄어들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월드트레이드센터 건설 전체 프로젝트는 뉴욕·뉴저지 항만청이 발주한 것이며 설계는 일본계 미국인인 야마자키 미노루(山崎 實, 1912~1986)가 맡아서 했습니다. 당초 설계는 각 타워에 엘리베이터 통행을 위한 6개의 큰 수직 공간이 바깥쪽으로 나도록 돼 있었는데 공간 활용 문제로 이를 3개로 줄이고 바깥이 아니라 건물 내부에 두도록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WTC 건물은 총 7개 동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남북으로 배치된 두 타워 (북측 타워 417미터, 남측 타워 415.1미터, 110) 외에도 크고 작은 빌딩이 5개나 더 있었던 것이죠. 메인 빌딩인 트윈 타워가 붕괴되면서 주변의 다른 건물들도 다 영향을 받아 못 쓰게 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건설은 20061월에 시작되어 메인 빌딩은 2013년에 완공되었으며 맨 마지막 건물(7 WTC)은 아직도 건설 중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 어떤 건물이 지어져서 9·11의 상처를 씻고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인가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왔었습니다. 일단 두 개의 타워 대신 하나의 주 타워를 짓기로 하고 그 명칭을 프리덤타워(Freedom Tower)로 정했다고 해서 9·11테러를 극복한다는 의미로서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 명칭 대신 보다 중립적인 명칭인 'One World Trade Center'로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새 타워는 104층으로 층수는 이전 건물들보다 적지만 높이가 541미터로 전보다 더 높아졌으며 완공 당시 세계 최고의 층고였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총 95개라고 하니 그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만합니다. 이 새로운 단지(團地) 안에는 '국립 9·11기념관/박물관'과 자유공원(Liberty Park)이 건립돼 있으며 옛 쌍둥이 건물 자리 한복판에는 바닥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풀(Reflecting Pool)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새 건물이 멋지게 들어서서 자유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 위용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라운드 지로로 불리던 쌍둥이 타워를 쉬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독재 간의 첨예한 대결 속에 놓여 있어 이로 인한 대충돌이 우려되고 있지만 지구상에는 이 외에도 문명의 충돌이 언제든지 대규모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불연속선(fault lines)이 많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외쳐봐도 평화는 인류의 꿈일 뿐이라는 허망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 HISTORY 채널에서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체포·제거 작전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또 보게 되었는데 9·11 이후 10년 만에 행해진 해군 네이비씰-CIA 합동 작전 성공 후의 한 에피소드가 특별히 기억납니다. 파키스탄 밖으로 공수돼온 빈 라덴의 시신 확인을 위해 작전대장이 한 대원에게 사체 옆에 누워보게 해서 두 사람의 키를 대조함으로써 193센티미터 키의 빈 라덴 본인임을 확인했다고 보고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한순간 침묵하다가 6천만 불짜리 블랙호크 헬기 한 대를 잃어버린 작전을 하면서 10불짜리 줄자 하나 안 가져갔냐고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피 말리는 결단의 순간들을 겪은 군통수권자만이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농담인 것 같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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