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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2-01-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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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발언대] [우림단상 220103 문제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분배 원칙’이다]

본문

[우림단상 220103 문제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분배 원칙이다]

 

한 유력 대통령 후보가 지난 연말 화상회의를 통해 저명한 정치철학자와 수준 높은 지적(知的)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았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이해와 소통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란 책으로 유명한 공동체주의자 샌델(M. Sandel)과의 대화로, 그의 유명세를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샌델은 2020년 펴낸 능력의 횡포(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에서 능력주의(能力主義, meritocracy)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건설과 계층이동(social mobility)​에 기여한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틀린 생각이며 신화일 따름이라고 폄하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공정하다는 착각(2020, 와이즈베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신화가 깨어져야 기득권층이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자신의 성공은 오롯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착각이 무너지게 된다고 하면서, 형식적 공정성은 실재하는 불평등을 교정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미국 사회가 신봉하는 기회균등(equality of opportunity)’의 이데올로기 대신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능력주의는 부, 권력, 명예와 같은 사회적 자원을 분배함에 있어 사람의 재능, 노력 등에 비례하여 보상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을 말한다. 능력주의는, 다시 말하면,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닌 능력이나 실적, 즉 메리트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를 일컫는다. ‘메리토크라시라는 용어는 영국의 사회학자 영(Michael Dunlop Young)1958년에 쓴 디스토피아 소설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주된 원리로 작동하는 능력주의는 미국 사회의 기회균등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근년 들어 자본주의적 분배 질서가 비판받게 되면서 이러한 능력주의도 덩달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2012년의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은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이 일반 종업원 소득의 350배 또는 400배를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시장자본주의적 분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 포럼의 창설자이자 집행위원장인 슈바브(Klaus Schwab)현재의 자본주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현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선언했다.

예일대의 마코비츠(Daniel Markovits) 교수2019년 런던경제대에서 행한 모리시마(Michio Morishima, 1923-2004) 교수 추모 강연에서 능력주의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20209월 미국 팽귄(Penguin)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한국에서는 같은 해 11세종서적에서 엘리트 세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다.

능력주의와 관련된 글과 책들을 이렇게 지루하게 소개한 것은, 21세기 들어 서구사회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글들과 함께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여러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밝히고 그러한 논지에 포함된 함정을 정확하게 지적하고자 함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공정을 논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서구사회의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분명하게 얘기하자면, 인류사회에서 수천 년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어 온,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주된 운영 원칙으로 작동되고 있는 능력주의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일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도화되고 있는 승자독식의 분배 구조즉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차등적으로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only the winner is rewarded and none of the losers get anything) 분배 구조가 핵심 문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북유럽 일부 사회에서 최고 소득자와 최저 소득자의 소득 차이가 3배 내외를 보이는데 비해,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이 일반 종업원 소득의 350배 또는 400배를 차지하는 분배 방식이 문제라는 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국내외의 여러 진보적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능력주의자체가 불평등을 낳는 주범으로 계층이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배 구조가 본질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적시하고자 한다.

공무원 채용과 대학입시에서 능력주의를 배척한다면 과연 무엇을 대안적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이 일부 제안하듯이 제비뽑기 방식이나 다른 전형 방식이 동원된다면, 과연 공정이 보장되고 불평등이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있을 것인가?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마이클 영은 능력을 [지능 + 노력]으로 규정하였다. ‘지능은 우연적 요인으로 치부하여 제외한다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과 게으른 사람을 동일하게 처우할 경우, 사회 진보와 생산성 향상은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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