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원일기
가끔은, 한라산 자락에서 꽃나무 가꾸는 이야기를 칼럼으로 써내곤 하는데 이제 그때가 또 돌아온 모양입니다. 위에 올린 제목을 보면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해 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전원일기'는 그 유명한 롱런(long-run) 드라마에서 따 온 것이죠. 얼마 전에 화면으로 양천리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감동 깊히 보았습니다. 해외를 들락날락한다고 80년부터 22년간이나 계속된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보질 못해 아쉬워하던 중 지난겨울 밤의 긴 시간 속을 헤매다가 손에 잡힌 KTV의 전원일기 재방을 몇 달 연이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명배우들의 연기도 당연히 수준급이었고 특히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흔치 않지만, 삼대가 한집에서 살면서 빚어내는 부모 자식 간 효도와 자애, 부부 간 또 고부 간 갈등과 애정, 이웃 간의 넉넉한 인심, 시골과 도시 아파트의 대조적인 삶, 늘 쓸 돈이 부족해도 그냥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연들이 곡진할 뿐만 아니라 요즘 드라마와는 달리 대화가 질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습니다. 최불암, 김혜자, 고두심, 김수미 등 일류 연기자들의 젊은 날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저는 딱히 농촌 출신이 아니지만 할아버지 때까지도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도 소싯적에는 집안 농삿일을 도우셨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농자천하지대본'을 일컫던 조선의 농업사회에까지도 생각이 미칩니다. 그런 연고로 1960, 70년대의 농촌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미래로 와버렸기에 느리게 돌아가던 그 시절을 반추해보는 데서 의미를 찾으려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다 아는 '전원일기'는 익숙해도 '나의 전원일기'는 덜 그러할 것입니다. 실상을 말한다면 전원일기라기보다는 화원(花園)일기가 맞겠고 나의 화원일기라기보다는 우리의 화원일기가 맞을 것입니다. 꽃나무 가꾸는 일은 대개 아내가 앞장서고 저는 뒤에서 보조로 나섭니다. 제가 하는 것이라고는 삽질과 톱질, 그리고 여기저기로 흙 퍼나르기 정도죠. 둘이서 몸을 놀려 한 십여 년 가꾼 정원이 이제 모습을 좀 갖춰가고 있습니다. 어떤 방문객은 "이건 정원이 아니라 공원이요"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아닌 게 아니라 둘이서 다 감당하기엔 벅차기도 합니다.
신록이 세상을 연두빛으로 감싸는 시절입니다. 녹음 이전에 신록이 있다면 신록 이전에는 초(初)신록이나 전(前)신록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 지난 수목에 돋기 시작한 불그스레한 싹은 하루가 다르게 커서 작고 귀여운 잎사귀로 변합니다. 자세히 보면 불그스레함과 노르스름함, 연두 등 분간하기 어려운 색의 스펙트럼이 자연을 찬연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초신록' '전신록'의 시간을 제일 좋아합니다. 새로운 생명들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눈을 희롱하는 윤슬로 신록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두드립니다.
올해는 봄의 일이 두어 주 빨리 왔습니다. 4월 초.중순에 만발하던 벚꽃이 3월 하순에 정점을 찍고 벌써 졌으니까요. 순서로 보면, 초겨울에 수선화가 먼저 고개 들어 인사를 하고 그다음 매화, 목련, 벚꽃의 순입니다. 매화는 졌지만 아련한 그 향기는 여전히 코끝에 남아 있습니다. "기쁨으로 피고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하던 그 목련은 멋진 꽃잎을 다 떨구고 신록의 잎들로 단장하였습니다. 그 무렵 같이 왔던 사과꽃, 배꽃의 순박한 화사함도 빼놓을 수 없죠. 벚꽃은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피었다가 바람에 흩어지고 비에 떨어져 길바닥을 온통 옅은 분홍으로 물들입니다. 흩어지고 떨어진 꽃잎들은 슬프기보단 차라리 찬란하였습니다.
이른 꽃나무들의 시간은 가고 이제 아리따운 작은 꽃들의 시간입니다. 로즈마리는 3월부터 피어 대문 안 양 길섶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라벤더도 귀여운 봉우리가 막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멋들어진 꽃으로 바뀌어 보라의 장관을 연출합니다. 가녀린 줄기 끝에 앉아 작은 바람에도 크게 일렁이는 원중왕(園中王) 모란도 어느덧 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골 여인들의 자태를 닮은 순박한 작약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사이 천리향, 산당화와 해당화, 라일락 등은는 피었다 벌써 졌거나 지는 중입니다. 길게 늘어진 등꽃들이 연보라의 안개를 만들고 있습니다. 피어나는 것은 다 생명의 기쁨으로 찬연하고 아름답습니다.
매년 이즈음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는 기쁨 속에서도 돌봐야 할 것은 점점 늘어납니다. 그중 관리하기가 지난한 잡초와는 매번 누가 이길 테냐, 하는 식이지만 어쨌든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정원을 가꾸면서 마주하는 놀라움 중 하나가 삽목입니다. 줄기를 잘 잘라서 땅에 꽂아넣고 한동안 물을 주면 거기서 뿌리가 나고 잎이 생기죠. 올봄에도 그렇게 새 생명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지켜보다가 살 것이 확실해지면 마음에 두었던 곳으로 옮겨 심습니다. 산수국, 삼색버들, 황금조팝, 세이지, 할미꽃, 좀작살나무 등은 삽목으로 새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삽목은 돈이 들지 않아서 좋지만 가끔은 작은 돈을 들여 오일장 같은 데서 새 품종들을 사오기도 하죠. 올해는 능수홍도를 세 그루 사서 집 앞 정원에 심고 배나무와 홍도를 몇 그루씩 가져와 안방 창으로 내다보는 언덕배기에 심었습니다. 또 작년에 임시로 심어놓은 미쓰김-라일락 아홉 그루가 제법 컸기에 블루베리밭 앞으로 옮겨 두 개의 군락으로 만들었더니 보기에 참 좋습니다. 이 꽃은 품종이 개발된 사연이 별나고 꽃 이름도 좀 그렇지만 연한 자주빛 작은 그 꽃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연전에 작은 것을 사와 심어놓은 목수국(木水鞠)도 어엿한 성인이 되어 흰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빠트려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낙은 공들이지 않고 절로 나는 새 생명들입니다. 어느 순간 비파나무 아래 갓난이 비파나무가 스무 개쯤이나 흩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조금씩 파내서 다른 데로 옮겨 심었습니다. 단풍나무도 새 혓바닥 같은 작은 잎을 단 아기 나무들을 바람 따라 여기저기 몰래 퍼뜨리죠. 소나무와 느릅나무는 너무 많이 퍼져서 이제는 솎아내기 바쁠 정도입니다. 월계수나 화살나무는 뿌리가 뻗으면서 그 위로 어린 나무들이 솟아납니다. 이들을 잘 건사해서 새 장소로 옮겨주는 일도 이 시절에 맛보는 즐거움의 하나죠.
전원일기로 시작해서 꽃나무 타령만 하고 정작 농사 이야기는 한 것이 없군요. 고추, 가지, 호박을 조금씩 기르던 작은 텃밭은 진작에 꽃나무들에게 내주었지만 제일 큰 꽃밭 한구석에 부추와 곰취가 몇 움큼씩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손이 안 가고 절로 자라나서 좋습니다. 진짜 농사는 이사 와서 바로 시작한 블루베리입니다. 작년에는 태풍이 잦았던 탓으로 관리가 소홀하여 수확이 보잘것없었습니다. 올해는 꽤 정성을 들이고 있어 머지않아 열매가 익으면 따서 가까이에 사는 지인과 동네분들에게도 조금씩 나줘줄 수 있을 듯합니다. 산자락에서 나무 농사나 고구마 농사를 하는 동네분들과는 이따금 만나 농사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수확물을 주고받기도 하죠. 농촌과 시골의 삶은 어디서나 드라마 '전원일기'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