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호 맥주 좋아하세요? 2019.09.20. *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 청류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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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19-09-21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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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발언대] 정달호 맥주 좋아하세요? 2019.09.20. * 자유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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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좋아하세요?

 

처음에는 '맥주 전쟁'이란 제목으로 시작했다가 아무래도 긴장감을 더해주는 것 같아서 부드러운 제목으로 바꾸었습니다. 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 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하였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을 때 그랬고 국내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때 그랬었죠.

조직 문화의 일환으로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밤 칵테일, 코리안 칵테일)나 소맥(소주 칵테일--심플, 오로라, 레인보, 선라이즈 등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맥주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맛나게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몰라도 소주 칵테일은 되도록 멀리하고자 합니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올리는 장점은 있지만 술맛으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이죠.먹고 마시는 것을 두고 기호를 딱 잘라 말하는 건 다른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네요. 다만 폭탄주 만들 때 최고급 양주를 타 넣는 별난 호기(豪氣)는 지양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냥 마시기에도 아까운 그 비싼 고급 위스키를 남용(濫用)하는 일이고 그 못지않게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삶의 일부이자 영혼이라 할 위스키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 되기 때문이죠.

무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철이나 운동 또는 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실 거리로 맥주만큼 당기는 술은 없을 거예요. 전통주인 막걸리도 좋지만 아무 때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할 수는 없죠.빈대떡 등 부침류나, 도토리묵 같은 무침류, 그도 아니면 김치 몇 조각이라도 앞에 놓여 있어야 막걸리를 마실 기분이 납니다. 매콤하거나 걸쭉한 전통 먹거리와 어울리는 게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외래주인 맥주가 걸쭉한 안주나 한식차림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이 '맞다', '안 맞다'를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나온 안주를 보고 막걸리냐, 소주냐, 맥주냐를 결정하는 게 옳을 듯하군요. 선택할 안주가 많다면 술 먼저 정하고 안주를 고르는 것이 애주가들에게는 더 익숙하겠지요.

음식과의 어울림을 따지는 데는 와인이 맥주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하겠습니다. 술과 음식의 조화(매칭, Matching)를 진지하게 따지는 프랑스인들이 그런 매칭(Vins et Mets)의 전통을 만들어 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맥주도 종류가 많고 브랜드가 많아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미식가나 애주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만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한 판매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건 제가 아직 진정한 맥주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의 매칭은 많이 마셔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술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리오!)

벽두에 '맥주 전쟁'이라고 했는데 지금이야말로 맥주 전쟁이 한창입니다. 대형 마트에 가보면 새로운 우리 맥주 브랜드에 온갖 수입 맥주들이 가세하여 진열대가 현란할 정도입니다. 눈이 즐거울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매력을 한껏 높이는 동시에 맥주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볼 수 있게도 해 줍니다. 근래 '테라(Terra)'라는 국산 브랜드가 나와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오고 있는데 7월 기준으로 출시 3개월 만에 1억 병이 나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Kloud)가 나와서 한동안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지요. 이런 판에 수입 맥주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있으니 가히 '맥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맥주의 종류가 많아져 소비자로서는 선택의 부담이 커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행복한 고민일 뿐이죠.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맥주 전쟁도 이따금 정치.외교의 바람을 타게 돼 있죠. 전장(戰場)을 들여다보면, 현해탄의 파고가 이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의 맥주 시장이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수입 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일본 맥주가 전 달에 비해 45퍼센트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새 맥주 강국 벨기에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맥주가 2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 애호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갔다지만 열혈팬들은 여전히 27퍼센트의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다네요. 현해탄의 파고가 다시 낮아지면 옛 팬들이 되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맥주 브랜드의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지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엊그제 뉴스를 보면 일본 맥주의 순위가 13위로 내려앉았다고 하네요.)

벨기에 맥주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라거(Lager)와는 다른 에일(Ale)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맥주 기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에일을 주로 하는 수제 맥주(Craft Beer)에 대한 기호도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데 점유율은 아직 전체 5조원 시장의 1.3퍼센트에 불과하다지요. 연평균 40퍼센트의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영국에 체류할 때 펍(Pub)에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그냥 에일을 가져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캠퍼스에도 맥주 카운터 같은 게 있는데 머그()나 파인트()에 받아와 잔디에 비스듬히 누워서 즐겨 마시던 불그스름한 에일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군요.

수제 맥주는 브루어리(Brewery), 즉 양조장과 판매장이 한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 양조장이 거느리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큰 도시에는 길에 수제 맥주 간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요. 길에 나가서 수제 맥주집이 안 보이면 큰 식당이나 골프클럽 같은 데에 들어가서 신선한 생맥주(Draft Beer)를 시켜 마실 수도 있지요. 생맥주는 병이나 캔이 아닌 캐스크(Cask)에서 직접 받아내므로 양조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사치(?)가 있지요. 게다가 ''맥주는 글라스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Bier muss im Glas wachsen)'라는 말도 있으니 기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맥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맥주는 마시는 이의 취향에 따라 마신다는 게 정답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맥주의 종류와 브랜드를 겪어보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소비자의 기호는 맥주의 종류와 브랜드, 때로는 알코올 도수에 달리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병이나 캔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하여 브랜드 이름과 글자체 모양도 한 몫을 하지 않을까 싶군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디자인의 맥주를 마시고 싶겠죠. 마트에 가보면 기라성 같은 브랜드의 맥주가 진열돼 있는 곳 한편에 맥주 글라스를 파는 매대(賣臺)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맥주병이나 맥주캔의 팩(Pack) 속에 브랜드가 새겨진 글라스 한두 개가 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글라스만 몇 개씩 포장하여 따로 파는 것이죠. 애호가나 수집가의 갈망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기실 맥주 전쟁의 한 양상으로 보입니다.

우리 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 쓰는 글라스는 벨기에 브랜드인 '스텔라 아르투와(Stella Artois)', 클라우드, 그리고 수제 맥주인 '맥파이(Macpie)' 글라스랍니다. 와인도 그렇지만 맥주도 그냥 물잔에 부어 마시면 시각적으로도 밋밋하고 맛도 덜한 듯해요. 꼭 그 맥주가 아니라도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 글라스에 따라 마시면 즐거움이 한결 더할 겁니다. 글라스의 디자인을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와인처럼 맥주도 글라스의 디자인을 감상하고 내용물의 빛깔을 완상(玩賞)하고 거품의 양태와 기포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와인잔이 레드와인, 화이트와인에 따라 다르고, 레드만으로 따지면 크게 보아 보르도(Bordeau)식과 부르고뉴(Bourgogne)식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까지 더하면 와인잔의 다양성은 대단할 겁니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맥주잔도 종류와 브랜드에 따라 상당히 다양화돼 있지요. 고블렛, 플루트, 튤립, 파인트 등 예쁘고 특성 있게 생긴 각종 잔에다 생맥주 용 큰 머그()까지 있으니까요. 대체로, 길고 입구가 좁은 잔은 탄산의 맛을 부각하는 라거에 맞고 몸체가 둥그렇고 입구가 넓은 잔은 향이 뛰어나고 진한 맛을 내는 에일 맥주에 어울린다고 하죠.

맥주 전쟁에서 우리는 어디쯤일까요? 세계 맥주 시장이 워낙 커서 우리의 점유율을 따져본다는 것이 별 의미는 없을 듯합니다. 빠르게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맥주를 생각하면 수출이 되기나 할까 싶군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 맥주 수출은 2010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주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톤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판매액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데 해외에서 우리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향수에 젖은 동포들과 케이 컬처를 업고 늘어나는 한식당들이 아닐까 싶네요. 맥아(麥芽)나 홉(Hop) 등 맥주 원재료에서 취약하긴 해도 머지않아 우리 제조기술이 올라 훨씬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해야겠죠.

맥주라는 걸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굳이 따진다면 역시 유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겠죠. 80년대 초 중동에 근무할 때 여름 휴가로 유럽을 돌면서 뮌헨에 들렀답니다. 도심 중앙의 큰 광장에 대형 노천 가게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니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죠. 한 가게를 택해 들어가서 맥주를 시켰더니 큰 머그()에 거품이 가득한 맥주가 나오고 먹거리로 화이트 소시지와 사워 크라프트가 노란 머스타드와 함께 커다란 쟁반에 올려져 나왔죠. 여름 휴가 중 들뜬 분위기에서 그런 안주를 놓고 그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셔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맥주에 더 끌리도록 한 사건(?)90년대 초 프랑스 체류 시에 있었답니다. 술이라고는 그저 포도주가 다인 줄 알고 술자리가 있으면 으레 포도주를 마시며 기회 있을 때마다 포도주 상찬을 아끼지 않던 때였습니다. 마트에 가서도 아내가 장을 보는 동안 저는 포도주 코너에 가서 수많은 포도주 병들을 관찰하는 호사를 누리곤 했는데 말하자면 눈으로 다양한 포도주를 마신 셈이지요. 매우 고급진 브랜드로부터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값싼 포도주까지 상표(Etiquette)의 구석 구석을 자세히 읽어보곤 하였답니다. 포도주의 본 고장임을 자랑하는 나라인 만큼 간략한 포도주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도 많아 가까운 거리의 학원에 가서 포도주 시음(試飮)을 겸한 강의를 듣기도 하였지요. (사실 맥주에 대한 이런 강의를 들었어야 제대로 된 맥주 이야기를 쓸 수 있을 텐데요.)

그런 만큼 주류 코너에 근사한 맥주가 진열돼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가끔은 시원한 맛이 당길 때 덴마크 산 칼스버그(Carlsberg) 병맥주를 사 마시기도 하였는데 칼스버그와의 인연은 70년대 말 노르웨이에 살 때 오슬로 시청 앞 부두에서 막 익힌 새우를 배에서 직접 사 가지고 와서 곁들여 마신 맥주가 칼스버그였기 때문입니다. 칼스버그는 브랜드 이름과 멋진 서체(書體)에 끌려서 친하게 된 맥주입니다. 좀 씁쓸한 맛에 도수가 비교적 높아서 좋아했던 것 같군요. 아무튼 포도주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맥주 이야기를 꺼낼 정황은 아니었죠.

좀 샛길로 빠졌지만 제게 본격적으로 맥주를 소환(召喚)한 사건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날 티브이 뉴스를 보던 중 불.독 정상회담이 양국 접경 지역인 스트라스부르(옛 알사스의 주도)에서 열리는 장면이 떴습니다. 두 지도자는 의전이나 형식도 없이 수시로 만나는 관계였는데 마침 포착된 장면이 시락(Jacques Chiraq) 대통령과 콜(Helmut Kohl) 총리가 어떤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었죠.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 총리와 만나서 맥주를 마신다는 게, 충격까지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하나의 이변으로 보였었지요. 당연히 포도주를 앞에 놓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들이 마신 건 멋진 잔에 담긴 맥주였던 것이죠. 볼록한 고블렛(Goblet) 맥주잔을 앞에 둔 시락 대통령이 여느 때보다 더 멋지게 보였습니다. 프랑스 대통령도 맥주를 좋아하는 마당에 나만 맥주를 멀리해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부터 맥주를 더 가까이해 온 것 같습니다.

맥주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기원전 25백여 년쯤 이집트 피라밋 공사 인부들이 맥주를 마시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맥주 제조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곡물이 비에 젖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는 순간 맥주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농경시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물 대신 에일 맥주를 늘 비치해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일은 발효 온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윗부분(上面)에서 발효토록 한 것이고 나중에 나온 라거는 발효 온도가 낮은 효모를 사용하여 아랫부분(下面)에서 발효토록 한 차이가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에일과 라거는 향미나 목넘김(飮感?)이 상당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1561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을 공포했는데 맥주는 물, ,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원료가 들어간 맥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밀맥주 제조는 면세 지역인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빌헬름 4세를 취향 면에서 맥주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령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 내 맥주 제조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어떤 독일 맥주 브랜드는 이 영()에 따라 주조했음을 밝히고 있죠.)

독일과 경쟁이 될 만한 체코의 맥주가 뜨기 시작한 것은, 1842년 플젠(Plzen)에서 제조된 황금색의 필스너 라거가 나오면서입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투명 유리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장을 휩쓸다가 독일로 역수출된 것이 필스너인데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란 대표 브랜드는 원조 필스너란 뜻으로 체코의 자존심을 지키는 한 축이죠. 맥주의 본방을 독일로 친다 하더라도 맥주 강국은 의외로 체코라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체코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43리터로 24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 오스트리아(106리터), 독일(104.2리터), 미국(74.8리터), 영국(67.7리터)의 순이고요.

맥주에 대한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기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해도 여러가지 브랜드를 접하다보면 기왕의 취향과 다른 맥주들을 찾게 되지요. 언젠가 브뤼셀에 들렀을 때 미술관 옆 큰 광장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던 스텔라 아르투와(Stella Artois) 생맥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양조장이 1366년에 세워졌다 하니 연도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 족하다고 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스텔라 아르투와를 멀리할 수 없답니다. 십여 년 전 이태리 남부 포지타노(Positano)에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던 페로니(Peroni)의 완벽한 블론드 빛깔과 가뿐한 그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에 가면 찾아서 마신답니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어느 광장에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맥주집(Cervezaria)이 있는데 굳이 그 집을 찾아 헤밍웨이가 와서 앉곤 했다는, 창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트레야(Estrella) 생맥주를 시켜 마셔보기도 했죠.

지금까지 유럽 맥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유럽 밖의 맥주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입량 2위를 자랑하는 미국산 맥주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버드와이저를 비롯하여 밀러, 쿠어스 등등. 미국 맥주, 하면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죠. 오래전 미국 체류 시 뉴욕의 셰이(Shea) 스타디움에서 메츠와 양키즈 게임을 보러 갔을 때 남들 하는 대로 종이컵에 든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사 마셨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인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미국 맥주, 하면 도매금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광고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미켈롭(Michelob)이란 브랜드를 즐겨 마신 적도 있습니다. 백만 불짜리 목소리를 타고 멋진 블론드의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는 장면이라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맛에 기업들이 광고에 그 많은 돈을 뿌리는 것이겠죠.)

미국인들은 잔을 사용하지 않고 병을 입에 대고 바로 마시는 걸 멋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저도 미국 연수 시절에 그렇게 동료들과 같이 마시기도 했으니까요. 유럽 출신이 대부분인 미국은 여러 면에서 미국다운 특별한 점이 있고 그 나름의 멋을 부리기도 하죠. 라거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와 홉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나 쌀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추면서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것도 미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 저는 맥주의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만 위스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써서 버본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낸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는 자연 풍토에서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죠. 먹거리와 마실 거리는 풍토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죠.

대국 중의 대국인 중국의 칭따오(Tsingtao, 청도) 맥주를 잠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공정한 일이 되겠죠. 중국 음식을 먹을 때 고급 백주(白酒)나 흔한 고량주를 마실 상황이 아니라면 그 대신 칭따오 맥주를 시켜 마시는 것이 상례(常例)가 아닐까 싶네요. 그보다도 사실 중국 식당에서는 칭따오 외에 다른 맥주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칭따오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리집에서 드러나게 눈에 띄는 맥주가 칭따오 아니겠습니까. 칭따오 맥주는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화요리에 얹혀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가끔 칭따오를 마시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지는 않는 편이지요. 칭따오 맥주는 19세기 말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산동반도에서 독일 기술자들이 맥주 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높은 기술 전승의 혜택으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봅니다.

맥주의 원료는 물, 맥아, 홉 그리고 효모인데 무엇보다 우선 물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나오겠지요. 아무리 물이 좋아도 좋은 맥아가 없고 좋은 홉이 나지 않는다면 훌륭한 맥주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홉은 덩굴식물의 꽃인데 종류에 따라 레몬이나 포도, 솔잎, 자스민 같은 다양한 아로마를 가미해 주죠. 말하자면 맥주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데 홉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물은 정제해서 만들 수도 있다지만 좋은 맥아나 홉은 수입해 와야 합니다. 그러니 제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원가 절감을 하다보면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죠. 아무튼 우리 스스로 근사한 맥주를 만들 때까지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와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채워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이 역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무역자유화의 덕이라 해야겠죠. 오늘날의 맥주 시장처럼 우리의 경제 생활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시금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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